더 미룰 명분 없는 방송3법, 이번엔 본회의 문턱 넘을까

최성진 2023. 11. 1.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언론장악]

남영진 전 한국방송 이사장(앞줄 오른쪽) 등 공영방송 이사들이 지난 8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의 공영방송 장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1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열리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내용을 담은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처리 여부에 언론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공영방송 일부 이사를 해임시켜 이사회 구도를 바꾸고 이를 통해 경영진 교체를 시도하는 행태가 반복됨에 따라 방송3법 처리의 당위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것이 언론계와 야당의 주장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야당 간사인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1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여당이 방송3법 처리를 막겠다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반대만 거듭할 뿐 이렇다 할 대안을 내는 것도 아니어서 다음달 9일 본회의에선 방송3법을 처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을 수 차례 발의한 같은 당의 정필모 의원도 “공영방송이 무너지는 현실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 지금이라도 공영방송 이사회와 사장 선출 제도를 개선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지난 9월21일에도 방송3법의 국회 처리를 시도했으나 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 이견을 이유로 본회의 상정을 거부한 탓에 표결 처리에 이르지 못했다. 마침 이날 본회의에서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 벌어진 것도 방송3법 처리 시도가 유야무야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이번에는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야당 설명이다. 먼저 방송3법 등 쟁점 법안의 본회의 상정에 유보적 태도를 취했던 김 의장이 상정에 동의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꾼데다, 그사이 헌법재판소도 야당의 방송3법 국회 본회의 직회부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법안 처리의 정당성이 더욱 탄탄해졌다는 것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 4월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과방위에서 방송3법을 본회의에 부의(직회부)한 행위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방송3법 관련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으나, 헌재는 26일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여당이 국회에선 무제한 토론으로 방송3법 처리를 막고, 민주당 단독 처리 강행시 대통령한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은 여전히 걸림돌이다. 방송3법은 공영방송의 이사 수를 21명으로 늘리는 동시에 여야의 추천권을 크게 줄이자는 것이 핵심이다. 나머지 추천권은 전문가 집단과 시청자, 각 직능단체에 배분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정치권의 입김이 개입될 공간을 최대한 줄이자는 취지인데, 여당은 이에 대해 “공영방송의 편파성을 오히려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이유를 들어 줄곧 반대해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는 여당의 반대와 관계없이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방송3법 처리라는 과제를 끝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방송3법이 본회의에 부의된 지 벌써 반년이 넘게 지났고 과방위 통과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무런 대안 제시 없이 법안 처리를 막고 있는 여당에 더는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무리한 공영방송 이사진과 사장 교체 시도가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는 점도 언론단체가 방송3법 처리를 강력히 요구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5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해임 이후 방통위를 통해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교체 작업을 거침없이 진행해 왔다. 한국방송에선 야권 성향 남영진 전 이사장과 윤석년 이사가 해임됐고, 두 명의 여권 성향 보궐이사(서기석·황근)가 그 자리를 채웠다. 이를 통해 여야 구도가 기존 4 대 7에서 6 대 5로 바뀐 한국방송 이사회는 김의철 사장을 해임한 뒤 현재 새 사장 후보자 선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만약 바뀐 방송법에 따라 한국방송의 이사 수가 11명에서 21명으로 크게 늘고, 여야의 추천권이 줄어든 상태였다면 쉽게 벌어지기는 어려웠을 일이다.

강성원 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장은 “방송3법이 통과됐거나 적어도 이와 관련한 국회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상황이었다면, 남 이사장과 윤 이사에 대한 해임과 후임 이사에 대한 임명 등 방통위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이사진 교체의 절차적 정당성은 더욱 약화됐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가 다른 공영방송인 문화방송과 교육방송은 가만히 놔두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이상, 늦었지만 이번 국회에서라도 방송3법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문화방송의 경우에도 대주주인 방문진의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 해임을 통해 한국방송과 같은 방식으로 이사진 교체를 꾀했으나, 권 이사장의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임기가 보장된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을 권력이 이사회 구성을 바꿔 해임하는 건 안 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과거 두 차례나 있었는데도 법치를 말하는 윤석열 정부는 이를 무시한 채 공영방송에 자기 사람 심기에 몰두하고 있다”며 “지금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야가 공수를 바꿔가며 공영방송을 정치적 전리품으로 만드는 행태를 막으려면 방송3법 처리라는 오래 묵은 과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