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학문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건축학교육의 인증제도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2023. 11.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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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학의 건축학과는 5년제가 주를 이루며 대부분 건축학교육프로그램 인증제도(이하 건축학인증)를 시행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 운영하는 건축학인증은 국내에서도 세계건축사연맹(UIA) 권고에 맞춰 건축교육에 대한 기준과 함께 인증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국가 인정 전문 자격인 건축사를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수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2000년대 시작됐다. 즉 건축학인증은 건축학 교육이 지니는 품질과 교육기관 수준을 평가하고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이 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생들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대학은 향상된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있다.

필자의 학교도 최근 건축학인증을 유지하기 위한 인증실사를 진행했다. 교수의 입장에서 건축학인증은 여러모로 번거로운 일이다. 인증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대학의 건축학 교육과정을 종합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방법, 커리큘럼, 교수진의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절차가 인증실사 기간에 진행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교수가 지니는 학문적 자율성, 교육철학 등을 타인의 관점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인증제도 도입 초반 대학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분야의 교수들이 보기에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본인들이 가르치고, 학과를 운영하는 내역을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제 제도가 안착된 지 16년여 정도 경과했다. 많은 대학들에서 여러 차례 인증실사를 겪으면서 대학의 교육환경과 커리큘럼의 질적 향상을 성취했다는 평가들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반론들도 있다. 대학의 자율적 운영이 침해 받고 전국의 대학이 일률적인 기준에 의해 평준화되는 등 대학별 차별화된 특성이 사라져 버렸다는 비판적 견해도 공존한다. 완벽한 제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아무리 정교하게 틀을 갖춘다 하더라도 부정적인 측면은 불가피하게 존재할 것이다.

필자는 처음으로 프로그램 책임자로서 인증실사를 겪으면서 이 제도가 가진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조금 더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건축학인증이 지닌 미덕 중 하나는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교수들을 끊임없이 정진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주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초임 때 한번 마련한 강의 교안을 정년 때까지 그대로 활용했다는 선배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이제 불가능한 것이 됐다. 특히 다학제간의 융합과 기술의 변화에 따른 학문 트렌드가 하루가 멀다하게 뒤바뀌는 요즘 강의 교안의 지속적 갱신은 필수 사항이 되고 있다. 인증제도는 외부의 시선을 빌려 교수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무엇보다 건축학인증은 교수, 학생, 행정 삼각편대로 이루어진 건축학과 공동체 공동의식을 고양시켜주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각자의 방을 쓰는 교수들은 같은 학과에 속해 있어도 소통이 용이하지 않은 집단적 특성을 지닌다. 건축학인증을 준비하면서 건축학과 교수들은 학과 전체 커리큘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중복돼 가르치는 부분은 없는지,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놓치는 것은 없는지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토론한다. 이는 곧 다른 교수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함께 리뷰하면서 상호보완하는 기회의 장이 된다. 학생들은 교수들과 함께 인증전시 준비를 하면서 본인들이 몸담고 있는 건축학교육프로그램 전체가 어떤 구조로 작동하고, 어떤 목적 의식을 지니는지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되어, 전공학습의 근본적인 동기부여가 된다.

이렇게 건축학인증이라는 건축학과의 가장 큰 이벤트를 통해 학과 공동체는 함께 협력하여 공동의 의식을 쌓아갈 수 있고, 지식 공동체로서 대학이 지닌 본래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양질의 교육과 환경은 어쩌면 이에 부속된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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