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고민하지 마. 명우형한테 오면 돼” [사람IN]

김다은 기자 2023. 11. 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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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바(bar) '레스보스'에 고요한 열기가 가득했다.

그 가운데 레스보스의 사장 '명우형'(윤김명우·66)이 앉아 있었다.

명우형이 레스보스를 처음 찾았을 때 그는 30대에 접어든 '선배 레즈비언'이었다.

하지만 10대 시절 학교 교사로부터 아우팅(자신의 성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혀지는 일)을 당한 뒤 마음 기댈 공동체가 없었던 그는 곧장 레스보스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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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이 주목한 이 주의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이야기에서 여운을 음미해보세요.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를 운영하는 윤김명우씨. ⓒ시사IN 박미소

레즈비언 바(bar) ‘레스보스’에 고요한 열기가 가득했다. 마치 지난밤 파티의 열기가 남아 있는 것처럼. 오후 5시, 저녁 햇살이 가게 내부를 비췄다. 그 가운데 레스보스의 사장 ‘명우형’(윤김명우·66)이 앉아 있었다.

1996년 서울 신촌에서 처음 문을 연 레스보스는 국내 최초의 레즈비언 인권단체 ‘끼리끼리’에 의해 만들어졌다. 명우형이 레스보스를 처음 찾았을 때 그는 30대에 접어든 ‘선배 레즈비언’이었다. 하지만 10대 시절 학교 교사로부터 아우팅(자신의 성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혀지는 일)을 당한 뒤 마음 기댈 공동체가 없었던 그는 곧장 레스보스에 빠져들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남자냐 여자냐를 따지지 않았다. '바깥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만나면 “너 아직 그 생활 하니?” 하고 물었지만, 어느덧 “그 생활이라니.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답할 수 있는 자부심도 생겼다.

방황하던 20대 시절에는 죽음을 생각하며 술에 의존했다. 하지만 30대가 되어 자신과 같은 ‘선후배’들을 만나며 마음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사업도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그즈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는 지금도 그 죽음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돌아가신 거야. 너무 속을 썩여가지고. 내가 아우팅을 당해서 여자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도 그 이야기를 평생 한 번도 안 하셨어. 언젠간 자식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고 속으로 다 삭이신 거지.”

명우형은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사과했다. “잘못했다고, 내가 미안하다고 엉엉 울면서 말했지. 그 말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 기력이 있으실 때 자식들에게 한마디씩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더니, 첫째 언니한테 한 말이 ‘둘째(명우) 잘 챙겨줘라’였어. 마지막까지 내 걱정을 놓질 못하셨던 분이야.”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 가족들과는 인연이 이어지고 끊기기를 반복했다. “한번은 막내동생이 조카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를 지르더라고. 그래서 얼굴 보지 말자고 했지. 정작 조카들은 그냥 이모 살고 싶은 대로 두라고 하는데(웃음).”

40대가 되어 레스보스를 인수하면서 그는 ‘오픈 퀴어’가 되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연극 무대에도 섰다. 불완전하게만 느껴지던 삶을 완성시켜준 경험들이다. 12월에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홈그라운드〉도 개봉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거울 앞에 선 명우형이 혁대를 매고,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선글라스를 고쳐 쓰는 모습이다.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바지씨(중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여성 성소수자를 일컫는 옛 은어)’, 그가 멋을 부리며 웃는다.

추석이나 설이 되면 레스보스에는 전 냄새가 가득하다. “얘들아, 길거리에서 헤매지 말고 밥 먹으러 와.” 그가 자주 하는 말이다. “가족이나 친구들한테 맞고 갈 곳이 없는 친구들, 우울증 때문에 약을 먹고 있는 친구들. 이런 친구들이 우리 가게에 와서 쉬다 가면 좋겠어. 나는 늘 걱정되고 궁금하거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봐. 성소수자 커뮤니티에는 비극적인 일이 너무 많으니까.”

그는 혼자 고민하고, 혼자 숨어 지내지 말라고 말한다. 레스보스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이들을 환대하는 장소가 한 곳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대화를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명우형한테 오면 돼. 알겠니?”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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