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의대증원 '단상'

김승진 센트럴흉부외과 대표원장 2023. 11. 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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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진 센트럴흉부외과 대표원장

의대증원에 대해 여야의 의견이 일치하고 국민여론도 의대증원에 많은 찬성을 표한다. 아무리 다수의 의견이라 해도 국민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문제이기에 다각적 분석이 필요하다. 의대증원을 주장하는 이유로는 응급실에서 중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소아과에 아침부터 오픈런 현상이 있고 필수의료분야에 의대 졸업생이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정원을 늘리자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응급실 중환자 인수거부를 해결하기 위해 처벌하겠다는 행정조치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 원인은 응급환자 분류 및 후송체계 부재 때문이지 의사수 부족으로 몰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본도 2008년 도쿄에서 산모가 분만 도중 의식이 저하돼 후송을 위해 8개 대학병원에 연락했는데 다 환자를 받을 수 없어 결국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후진단은 뇌지주막하출혈이었다. 당시 일본은 이 사건 때문에 의대정원을 늘리지는 않았다. 대신 재발방지를 위해 캐나다의 응급환자 분류 및 후송체계를 벤치마킹해 일본형 응급환자 분류 및 후송체계를 구축했다. 119로 전화하면 구급차가 10분 이내에 도착하고 구급대원이 환자를 파악해 7119로 전화한다. 간호사가 전화를 받아 파악한 후 당직의사에게 보고하면 환자를 중증 응급정도에 따라 분류한다. 경증환자는 의원급 야간 응급실, 입원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지역 중소병원 응급실, 중증 응급환자는 종합병원 응급실로 분류해 50분 내에 환자가 응급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즉 대학병원은 우리나라처럼 마음대로 갈 수 없다. 환자가 직접 7119로 전화해도 동일한 순서로 대응한다. 도쿄대병원(세계병원순위 17위)이 2022년 수용한 응급환자는 1만2315명으로 서울아산병원의 9분의1 수준이다. 우리나라도 과거 1339 전화가 있어 전화를 걸면 공중보건의사가 받아 환자를 분류한 다음 경증환자는 상담 후 다음날 동네의원으로 가도록 안내하고 응급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병원을 지정하고 후송하는 체계였다. 2012년 119법이 개정돼 소방청이 환자신고 및 후송을 전적으로 맡게 되면서 경·중증 여부를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대학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하니 대학병원은 늘 환자가 넘쳐나면서 중환자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병원 응급실의 경증환자 비율이 86%에 달한다. 영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선 3차병원을 마음대로 갈 수 없다. 이런 문제를 정치인에게 이야기하면 민란이 두려워서 시행을 못하겠다고 한다. 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정치인의 일이지 않을까. 소아과 오픈런 현상도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실 집단사망사건 후 의료진 7명이 기소돼 3명이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최근 대법원 판결로 다 무죄가 됐지만 이 사건 후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이 2018년 101%에서 2023년 16.3%로 급락했다. 힘들게 수련해 구속될 가능성이 많은 과를 누가 선택할 것인가. 공공의대와 지역의대를 이야기하지만 자녀의 교육문제, 개인적 사회관계 단절, 배우자의 직장문제, 문화시설 부재 등으로 의사들 역시 지방근무를 꺼린다. 서울에서 경북 영주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의사가 실제로 존재한다.

OECD 통계로 우리나라 의사수가 아주 적다고 이야기하는데 병상수와 의사근무시간은 우리나라가 최고며 건강보험수가는 후진국의 그것보다 못하다. 건강보험의 저수가는 정부도 인정하는 바다. 이런 산적한 문제는 다 놓아두고 의대만 증원한다면 이공계의 의대쏠림이 더 심해지고 필수의료 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다. 벌써 대치동 학원가는 의대증원 문제로 과열되고 있지 않은가. 일본의 자치의대, 대만의 양명의대 등 지역의사제도가 있으나 성과는 썩 좋지 않다. 대만판 공공의대라고 할 수 있는 양명의대는 졸업생 655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취약지에서 근무하는 비율이 1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공중보건 장학금이라는 제도로 의대에 재학할 때 학비를 제공하는 제도가 있었으나 지금은 유명무실하다. 제도를 개선하고 여건을 완비하면 필수의료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대표적 기피과인 흉부외과는 미국에서는 제일 인기 있는 과목이다. 이런 일들을 다 몰라서 정부와 여야는 의대증원을 강행하는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부러워한다. 위의 문제점을 국민적 합의를 통해 해결한다면 더욱 더 세계 최고의 의료제도가 되리라 생각한다.

김승진 센트럴흉부외과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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