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알레르기도 모르는 엄마…‘독친’ 그릇된 조건적 사랑이 향한 파국 [SS무비]

함상범 2023. 11. 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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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친’ 스틸컷. 사진 | 트리플픽쳐스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고등학교 3학년 유리(강안나 분)가 귀가할 시간,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들린다. 먹음직스러운 꽁치찌개다. 분위기만 보면 여느 화목한 집안과 다름없다.

유리는 인상을 찡그린다. 생선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는데, 또 생선 반찬이다. 혜영(장서희 분)은 ‘그래도 한 번 먹어봐’라며 달랜다. 엄마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려 꽁치를 먹는다. 종일 긁느라 잠도 못자고, 목 뒤쪽이 붓는 건 유리의 몫이다.

1일 개봉하는 영화 ‘독친’의 한 장면이다. 제목인 ‘독친’은 ‘독이 되는 부모’라는 뜻이다. “나는 딸을 사랑했어”라고 부르짖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딸을 핍박하는 엄마만 보인다.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제한하고 심지어 좋아하는 친구마저 뺏어버린 엄마다. 삶의 주체성을 잃은 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뿐이다.

‘독친’ 스틸컷. 사진 | 트리플픽쳐스


‘독친’은 평소와 다른 아침, 학교에 간 줄 알았던 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 혜영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자신이 퍼준 사랑 때문에 타살은 있을 수 없다고 여긴 혜영은 점차 진실과 마주한다.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다”는 말이 습관처럼 나오는 엄마 혜영은 얼핏 보면 딸을 애틋하게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매우 조건적인 사랑이다. 성적이 잘 나와야 웃고, 공부를 잘해야만 반긴다.

반대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서운 호통이 나오고, 딸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도청을 시도한다. 사랑보다는 핍박, 혹은 통제에 가깝다. 사랑을 이용한 학대이자 괴롭힘이다. 학교도 안 들어간 어린 아들도 아는 걸 엄마만 모른다.

결혼정보업체에서 사람의 등급을 자본주의적 관점으로만 나누는 것에 익숙한 혜영은 딸을 명문대에 보내는 것에 전념한다. 딸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다. 유리가 영혼이 자유로운 가수 지망생 친구 예나(최소윤 분)와 가까워지자, 엔터회사에 가서 “유리를 만나지 말라”고 호통을 친 것이 딸의 목숨을 끊는 계기가 됐다.

연출을 맡은 김수인 감독은 신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려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결과를 보여주고 원인으로 들어가는 독특한 플롯임에도 어렵지 않게 설명하며, 인물 전반의 감정선과 분위기를 일관되게 유지한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언어를 가르친 적 있는 김 감독은 교육열이 높은 환경에서 직간접적으로 느낀 경험을 영화에 녹였다. 영화의 공식을 따라가는 중에 때론 매우 생생한 설정과 장면으로 작품만의 인장을 새긴다.

‘독친’ 스틸컷. 사진 | 트리플픽쳐스


장서희와 오태경을 제외하곤 주요 배우진이 신인이다. 강안나와 최소윤, 윤준원, 강혁일 등 아직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인데, 꽤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비교적 절제된 톤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상황에 맞는 감정을 표현한다.

딸을 잃고 충격을 받은 혜영 역의 짙은 감정을 표현하는 장서희의 연기가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는 건 다른 배우들이 적절히 균형을 잡았기 때문이다. 감독의 디렉션이 주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영화적 톤 앤드 매너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높은 듯 보인다.

아울러 영화가 갖는 메시지 또한 품위가 있다. “넌 뭐가 되고 싶어?”라는 예나의 말에 “엄마의 엄마가 돼서 사랑을 주고 싶다”는 유리의 대사는 여운이 깊다. 그릇된 사랑을 전하는 혜영, 그리고 방식은 서투르지만 마음만은 진심인 이 시대 엄마들을 다독이는 창작자의 포용력이 뭉클함을 준다.

시대가 변하면서 부모의 미덕도 바뀌고 있다. ‘내 자식’이라고 내세우기 전에 ‘언젠가는 떠날 귀한 손님’의 시선으로 자식을 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혜영 딸이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내가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이가 한둘이 아닐 테다.

‘독친’ 스틸컷. 사진 | 트리플픽쳐스


그런 태도는 마치 대물림처럼 상처를 전이시킨다.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값은 결국 부모가 돌려받는 게 이치다. 혜영처럼 더 큰 아픔을 겪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독친’을 본 뒤 생각이 점점 깊어진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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