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받아본 야유…5위가 잘한 것일까” 국민타자 고뇌와 자책, 다시 한번 고개 숙였다
[OSEN=이천, 이후광 기자] 두산 이승엽 감독이 지도자 첫해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성과에도 베어스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울러 내년에는 5위보다 더 높은 곳에서 시즌을 마칠 수 있도록 마무리캠프부터 철저하게 준비하겠다는 각오까지 덧붙였다.
지난해 창단 첫 9위 수모를 겪은 두산은 2023시즌 74승 2무 68패 5위에 오르며 2년 만에 포스트시즌 초대장을 받았다. ‘국민타자’ 이승엽 감독의 부임, FA 최대어 양의지와 20승 에이스 라울 알칸타라 복귀 등 스토브리그를 알차게 보내며 1년 만에 9위 충격을 씻는 데 성공했다. 이승엽 감독은 지도자 경험 없이 두산 지휘봉을 잡았지만 첫해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의미있는 성과를 냈다.
다만 올해의 경우 공동 3위 싸움을 하다가 5위로 떨어지며 가을야구 진출의 기쁨이 반감됐다. 작년 하위권에서 5위로 도약한 기쁨보다는 지금보다 더 높은 순위도 가능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컸다. 전력 안정화에 실패하며 11연승과 7연승을 각각 한 차례씩 하고도 긴 연패에 빠져 승리를 까먹는 악순환이 지속됐고, 새 얼굴 발굴 실패로 주전급 선수들의 체력 부담이 커졌다.
그토록 바랐던 포스트시즌 또한 1경기 만에 허무하게 종료됐다. 지난 19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9-14로 패하며 준플레이오프 없이 시즌을 그대로 마무리했다. 초반 선발 곽빈의 호투와 1회부터 3회까지 매 이닝 득점을 앞세워 3-0 리드를 잡았지만 4회 5실점, 8회 6실점 등 두 차례나 빅이닝을 헌납하며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미숙한 투수교체, 시즌 막바지 8연전을 소화한 불펜진의 체력 과부하 등이 패인으로 꼽혔다.
10월 31일 이천 베어스파크에서 열린 마무리캠프 첫 훈련에서 만난 이 감독은 “지난해에는 설렘, 기대감, 불안감이 있었는데 1년을 해보니 익숙한 느낌이 생겼다”라며 “다만 5위라는 결과가 마음이 편하진 않다. 조금 더 책임감이 생긴다. 지난해에는 모든 선수들, 스태프가 처음이었고 어수선했는데 1년간 해왔던 걸 복기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조금 익숙함이 생긴 것 같다”라고 두 번째 마무리캠프를 지휘하는 소감을 전했다.
이 감독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끝난 뒤 약 2주의 휴식을 얻었지만 리프레시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2023시즌에 대한 아쉬움과 2024시즌 도약을 동시에 생각하며 고뇌와 자책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5위라는 성적이 과연 잘한 것일까. 아니면 못한 것일까. 아쉬움인가”라고 운을 떼며 “어떨 때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어떨 때는 아쉽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 시간이 빨리 갔다. 두산 팬들의 기대가 크셨으니까 실망도 크셨을 것 같다. 최선을 다한 결과였는데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라고 두산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일부 두산 팬들은 이 감독의 첫해 성과에 박수가 아닌 야유를 보냈다. 논란의 장면은 16일 포스트시즌 출정식에서 발생했다. 잠실구장 전광판을 통해 2023시즌 결산 영상을 상영한 두산. 도입부에 ‘새 사령탑 이승엽 감독 취임’이라는 문구와 함께 이 감독의 작년 10월 취임식 영상이 송출됐고,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가을야구 진출의 기쁨을 만끽하는 포스트시즌 출정식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 감독은 “사실 마산에서 응원석을 보고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더 했는데 그 부분이 실현되지 못해서 팬들에게 죄송스럽다”라며 “나 같은 경우 야유를 처음 받아봤다. 팬들 그런 평가를 해주셨기 때문에 당연히 인정할 것이다. ‘역시 프로는 냉정하구나’라는 걸 느꼈다. 내년 마지막 경기 때는 박수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올해 5위를 했으니 내년에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한다. 그래서 이곳에 지금부터 모인 것이다. 올해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부임 후 두 번째 마무리캠프를 맞아 신예 육성에 포커스를 맞출 계획이다. 보다 공격적인 세대교체를 통해 베테랑과 신예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게 목표다.
이 감독은 “새 얼굴이 나와야 경쟁이 되고 기존 선수들이 긴장한다. 주위에 라이벌이 있으면 본인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향상된 실력을 통해 더 높은 곳을 차지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라이벌이 없더라도 기량이 향상될 수 있겠지만 누군가가 항상 치고 올라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시너지가 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 기대했던 김대한, 김민혁 등 젊은 야수진이 생각만큼 올라오지 못했다. 감독 책임이다”라며 “마무리캠프에서 백업들을 주전급으로 만들고 싶다. 내년에 조금 더 공격적이고 재미있는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이번 가을과 내년 캠프에서 많은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돼야 한다. 올해 두산 타선은 생각지도 못한 부진에 시달린 기억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두산 이승엽호의 2년차 목표는 5위보다 더 높은 곳에서 가을야구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 감독은 “두산 팬들을 위해 내년에는 높은 곳에서 팬들의 눈높이에 맞는 야구를 해보도록 노력하겠다”라며 “다만 그 전력이 어느 정도가 될지는 미지수다. 아직 내년에 어떤 야구를 하겠다는 말씀은 드릴 수 없다. 마무리캠프, 스프링캠프, 시범경기를 통해 여러 테스트를 하면서 시범경기 끝날 쯤 두산의 2024시즌 야구를 설명드리겠다”라고 각오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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