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ETF 살포 없다"…한화운용, 선택과 집중 나선다
9월 조직개편서 연금·ETF·디지털 직접판매 통합
"지금껏 과도한 신상품 출시…앞으론 선별적 상장"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다작 플레이어’로 통하던 한화자산운용이 변화를 선포했다. 지금까지의 상장지수펀드(ETF) 전략과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올해까지만 해도 신상품 ETF 출시에 열을 올리며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앞으로는 선택과 집중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배경에는 자산운용사 최초로 연금과 ETF 부문을 통합하는 조직개편이 있다. 업계에선 운용사의 미래를 책임질 분야가 연금과 ETF로 압축된 만큼 한화자산운용이 과감하게 첫 발을 뗐다는 평가와 운용사 최초 시도인 만큼 불안하게 지켜보는 시선이 공존한다. 그 중심에 최영진 한화자산운용 전략사업부문장(사진)이 있다.
“앞으로 ETF 경쟁적 출시 없다” 배경엔 부문 통합
최 부문장은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ETF 전략 변경 계획을 귀띔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우리도 ETF를 하려는 회사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지기 위해 조금 과도할 정도로 신상품을 많이 출시한 측면이 있다”고 운을 뗐다.
실제 한화자산운용은 지난 2022년 상반기 신규 ETF를 10개 상장하며 최다 출시 타이틀을 따냈다. 올 들어서도 코스피 시장에 신상품 11개를 선보였다. 순자산가치총액이 비슷한 수준인 키움투자자산운용(2조6188억원)이 ETF 4개를 출시하는 사이 세 배 가까이 많은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31일 기준 시장에 상장된 ETF만 788개에 달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양치기’는 없을 것이란 게 최 부문장의 설명이다. 그는 경쟁적인 ETF 신상품 출시에 대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니다”며 “앞으로 10년, 20년 혹은 그 이상의 글로벌 메가트렌드에 부합하며 충분한 수요가 있는 ETF 중심으로 상품을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ETF 전략이 ‘다작’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바뀐 건 9월 단행한 조직개편과도 관련이 있다. 권희백 한화자산운용 대표 취임 후 첫 조직개편 핵심은 ‘통합’이다. 지금까지는 투자 자산과 지역을 구분해 부문제로 운영해 왔지만 이제는 자산 유형에 따라 4개의 사업부문으로 줄인 것이다.
이 중 최 부문장이 맡아 이끌고 있는 건 전략사업부문이다. 연금과 ETF, 디지털 직접판매 채널인 파인(PINE)과 신사업을 총괄한다. 연금과 ETF 부문을 통합한 건 한화자산운용이 최초다. 최 부문장은 “연금의 경우 개인의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 미래 자산운용사의 중요한 자금 원천인 만큼 연금 시장 개척이 매우 중요하다”며 “공모펀드 시장이 쇠락하는 반면 그 시장을 대체하는 건 주식시장에 상장된 펀드인 ETF”라고 설명했다.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사업부문이 연금과 ETF로 좁혀진 만큼 두 영역을 하나의 사업부문으로 통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연금·ETF 통합 첫 발 뗀 한화운용, 업계서도 주목
지금껏 여타 운용사들이 엄두를 못 냈던 연금과 ETF 부서 통합은 최 부문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각각 독립된 연금과 ETF 본부가 수평적 관계에서 성과 경쟁을 하다가 수직적 통합이 이뤄질 경우 조직 내부 반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화자산운용이 본부를 통합한 부문을 상위에 신설할 수 있었던 건 연금과 ETF 수장들이 최 부문장과 동고동락하며 쌓인 신뢰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차덕영 연금솔루션사업본부장과 김성훈 ETF사업본부장은 각각 최 부문장이 중국법인장과 전략본부장을 맡았을 때 인연을 맺었다.
최 부문장은 “본부 간 수익이나 영업 등으로 서로 경쟁하느라 시너지를 못 내는 경우가 많다”며 “고객 관점에서 훨씬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부문을 신설해 연금과 ETF의 강점을 합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운용업계에선 한화자산운용의 최초 시도를 주목하고 있다. 펀드 시장이 쪼그라드는 가운데 연금과 ETF 위주로 시장이 재구성되며 두 부서를 통합해 운영해야 할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운용사 입장에서는 연금 관련 펀드와 ETF를 제외한 부서의 규모는 점점 줄여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연금이나 ETF에 발을 안 담그고 있는 인력들이 불안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선 두 부서를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다만 연금과 ETF 부문 통합 움직임이 다른 운용사로 확대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모든 운용사가 ETF와 연금에 집중하고 있지만 각 부서 간 밥그릇 지키기 때문에 통합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별적 ETF 출시, EMP 펀드 제공, 직접 판매로 비용↓
최 부문장은 모든 시너지가 통합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가 그리는 청사진을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고배당ETF와 K-방산ETF 등 장기 성장가능성이 돋보이는 상품 위주로 ETF를 출시한다. 장기 투자 목적에 맞는 ETF들을 묶은 EMP(ETF managed portfolio) 펀드를 제공한다. 증권사나 은행에 의존하는 대신 한화자산운용의 펀드는 한화자산운용이 직접 판매해 수수료를 줄인다.
그는 “연금자산 펀드는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해야 한다”며 “장기 펀드인 만큼 운용 비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비용을 줄인 만큼 더 좋은 성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개인들이 다양한 전략을 공부해서 스스로 ETF를 모으는 직접투자도 가능하지만, 전략과 목적에 맞게 선택된 ETF를 조합해서 운용하는 EMP 펀드도 중요한 투자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화자산운용 자체 판매채널인 파인을 이용하면 판매사에 돌아가는 비용을 줄여 고객에게 수익으로 돌려드릴 수 있다”며 “퇴직연금 자산을 40년 넘게 운용하고 은퇴한 이후에도 그 자금을 통합된 부문에서 운용한다면 차이는 클 것”이라고 밝혔다.
김보겸 (kimkij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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