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조의 만사소통] 아들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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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왜 한 손으로 운전하지?' '어 어 어 노란불에서는 서야지.' '아니 브레이크는 왜 이렇게 거칠게 밟아.' '회전은 왜 이리 급해.' 속이 탄다.
왜 참아야 하는가? 참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들은 아들 나름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짝 한발짝만 내 방식에서 비켜서 보면 남의 입장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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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굳이 조깅을 하겠다는
아들의 이해할 수 없는 결심들
잔소리하기 싫어 꾹꾹 참다 문득
‘내 잣대로 평가하는 건 아닐까
참을 게 아니라 이해를 해야지’
상대의 방식 존중하려 노력하니
새롭고 아름다운 것이 보이더라
‘얘는 왜 한 손으로 운전하지?’ ‘어 어 어 노란불에서는 서야지.’ ‘아니 브레이크는 왜 이렇게 거칠게 밟아.’ ‘회전은 왜 이리 급해.’ 속이 탄다. 속이. 지난 추석의 일이다. 스물세살 아들놈이 느닷없이 “아빠, 이번에는 제가 풀코스로 모시겠습니다”라며 고향 가는 길에 핸들을 잡았다. 풀코스는 무슨, 차 안을 놀이공원으로 만드는 게 풀코스인가? 손끝 발끝이 찌릿찌릿, 온몸에 땀이 삐질삐질. 아들의 용맹함에 고향 길 내내 뒷목이 뻐근했다. 말 한마디 못하고.
‘뭐 하루에 4시간만 잔다고? 네가 에디슨이냐?’ 군대에서 갓 제대한, 그 스물세살 난 아들이 세상 열심히 살아보겠단다. IT(정보통신)쪽 일이니 이해될 법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다 좋다. 좋은데, 어떻게 4시간을 자고 살 수 있냐고?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 또 밤 12시가 다 돼서 조깅을 간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무슨 운동이냐고? 입이 근질거려 미칠 노릇이다. 말하자니 잔소리 같고, 안 하자니 또 속이 탄다. 역시 말 한마디 못한다.
왜 말을 못했느냐고? 아들과 잘 지내고 싶다. 늘 대화의 꽃을, 그야말로 활짝, 피우고 싶다. 꼰대 소릴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속이 타지만,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를 되뇐다.
왜 참아야 하는가? 참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들은 아들 나름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운전도 그렇고, 잠자는 시간도, 조깅도. 이미 성인이고 자신만의 인생이 있을 것이다. 아들만의 방식과 기준을 존중해야 하지 않는가?
아들만 이런 것일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과 기준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잘 놓친다. 대개의 경우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또 자신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그런데 자신의 기준과 방식을 너무 고집하다보니 불통이 되고 갈등이 생긴다. 특히 가족 간에는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식 간에. 우리 집도 내가 참지 않았다면 벌써 아들과 사달이 났을 것이다.
소통의 기본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쉬운 일 같지만 이게 어렵다. 잘 까먹기도 한다. 내 방식과 기준이 화석처럼 굳어 있기 때문이다. 남의 방식과 기준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서다.
그런데 살짝 한발짝만 내 방식에서 비켜서 보면 남의 입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세상이 편하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인다. 내 방식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더 넓고 큰 세계가 보인다. 그래서 내 방식과 기준이 더 크고 넓게 다듬어진다. 참 희한한 일이다. 버리니 채워진다. 더 좋게.
어쩌면 우리 사회도 획일적인 기준만 강조돼온 것은 아닐까? 다양한 기준과 관점보다는 특정한 하나의 기준이 강조돼서 소통이 되질 않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한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밤늦게 천변을 걷는다. 아들처럼 심야에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참 보기 좋다. 땀 흘리며 애쓰는 모습을 보니 스스로의 삶을 얼마나 소중하게 가꾸는지 알 것 같다. 그동안 이 사람들이 왜 안 보였을까? 아마도 내 방식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화석처럼 굳어진 내 잣대로만 보려했기 때문이다. 내려놓으니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이 잘 보인다.
“아빠 이번주 일요일에 뭐해요? 저랑 드라이브 가실래요?”
‘이크, 또 드라이브 가잔다. 이를 어쩌지?’ 이번엔 같이 신나게 놀아야겠다.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김혁조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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