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료 차등 인상, 낸 만큼만 받기… 정부 새 제안, 연금개혁 정석? 분란거리?
청년·지속가능성에 초점… 여론은 "소득대체율 인상"
"연금공적 기능 포기, 민간보험화 시도" 비판도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포함된 △보험료율 세대별 인상 속도 차등화 △낸 만큼 받는 확정기여형(DC)으로 전환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을 두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모두 정부 자문기구인 재정계산위원회,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본격 논의된 적이 없는 방안이다.
저출생 고령화 추세로 연기금 고갈이 예정된 상황에서, 연금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면 제도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정부의 구상이 이들 방안에 담겼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특히 보험료율 차등 인상은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방안이라 한국 고유의 연금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는 요소라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제도 설계와 실행 과정에서 적잖은 난관이 예상되고, 국민연금이 자칫 보편적 노후 보장이라는 공적 취지를 잃고 '부익부 빈익빈' 식 민간보험과 다를 바 없어질 거라는 우려도 있다.
31일 학계,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복지부가 27일 공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은 '재정안정화'와 '청년'을 겨냥했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보험료율·소득대체율 등 핵심 지표의 목표치가 제시되지 않아 '맹탕' 평가가 나왔지만, 정부는 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현행 9%인 보험료율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큰 방향을 제시했다. 아울러 '어차피 내도 못 받는 연금'이라는 청년세대의 불신을 달래고자 제도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뒀다.
"세대 형평성 높일 획기적인 안" "더 복잡해져 불신 커질 것"
가입자 연령에 따라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달리한다는 정부 방안은 '청년'과 '재정',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절충안으로 풀이된다. 보험료율을 일괄 인상하면 중장년층에 비해 오래 납부해야 하는 청년층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청년층 보험료는 천천히 올리고 중장년층은 상대적으로 빨리 올려 세대 간 형평성을 맞춘다는 발상이다. 예컨대 보험료율을 15%로 올리기로 연금개혁 방안이 결정됐다면, 장년층은 매년 1%포인트 이상 올리고 청년층은 0.5%포인트씩 올려 목표 요율에 도달하는 시기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청년층 대상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복지부가 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연금에 대한 신뢰도가 유독 낮은 국내 상황을 고려하면 '보험료 차등 인상'이 미래세대를 설득할 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연령이 어려질수록 소득대체율(연금 가입기간 평균소득 대비 연금수령액 비율, 올해 42.5%에서 2028년 40%로 인하)이 떨어지는 구조라 중장년은 청년보다 높은 소득대체율을 적용받는다"며 "청년층이 불리한 만큼 기여도를 조정해 주면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연금 제도를 더 어렵게 한다는 반론도 있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부과와 징수의 복잡함을 극대화해 사회보험제도 운영에 문제를 초래하고 연대성을 해칠 수 있다"며 "세대를 나누는 기준도 자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재정 불확실성 지울 방안" "소득대체율 더 떨어져 우려"
자동안정화 장치 도입과 확정기여형 전환은 기금 고갈 사태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매번 제도 조정 논의를 생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자동안정화 장치는 인구 구조와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확정기여형은 '낸 만큼 받는' 제도로, 납부한 보험료에 기금 운용 이자를 얹어 지급하는 방식이다. 급여 수준을 미리 확정하고 이를 지급하고자 기금을 활용하는, 현행 확정지급형(DB)의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를 대체하는 안이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이들 방안은 일부 전문가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연금 누적 적자를 해소할 수 없어 대안 논의가 필요하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70%가량이 미래세대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 다수는 두 방안에 대해 "일러도 너무 이르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지금은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 등 보다 현실적 사안에 집중하면서 연금 제도 성숙도를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주요국에 비해 낮은 수준인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더 떨어져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제도 취지가 퇴색된다는 우려도 있다. 오종헌 국장은 "확정기여형 전환은 민간보험사 운영 방식으로 공적연금 기능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라며 "OECD 1위 수준인 노인빈곤율을 고려하면 소득대체율을 올려도 부족한데 반대의 길로 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두 방안이 국민 여론과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지부가 공개한 연금개혁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금보다) 더 내고 더 받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응답률(38.0%)이 '덜 내고 덜 받도록'(23.4%), '더 내고 지금만큼 받도록'(21.0%)보다 높았다. 소득대체율 인상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받는 것보다 적게 내는 현재 구조에서 두 안을 도입하면 소득대체율이 20% 수준으로 떨어진다"며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개혁한 뒤 추후 논의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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