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62] 제주 메밀국수
제주는 화산섬이다. 땅이 척박하고 물이 귀해 논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밭농사도 쉽지 않다. 해안 마을은 ‘바당(바다)’에 의지해 깅이죽이나 보말죽으로 보릿고개를 넘겼지만, 중산간 마을이 쳐다볼 수 있는 곳은 오름과 척박한 밭뙈기뿐이었다. 해안이든 중산간이든 쌀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보리도 귀해 조, 메밀, 콩, 감자 등으로 식량을 대신했다. 다행스럽게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고 생육 기간도 짧아 이모작도 가능하다. 또 감자도 이모작을 할 수 있다. 배고픈 시절 이보다 고마운 작물이 있을까. 제주에서는 메밀을 이용해 메밀국수는 물론 쑥과 버무린 메밀쑥범벅, 꿩 뼈로 육수를 내고 살을 발라 고명으로 얹은 꿩메밀칼국수, 메밀고구마범벅, 미역을 넣고 수제비를 뜬 메밀조베기 등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지금도 중산간 곳곳에서는 하얗게 핀 메밀꽃을 볼 수 있다.
메밀 전문 식당이 있는 광평리를 찾았다. 이곳은 해발 500m에 있는 마을인데 주민들이 생산한 메밀로 음식을 차려내는 곳이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가는 중산간에 있어 가기가 쉽지 않은데도 이른 시간부터 대기자가 많다.
메밀은 제주 농경의 여신 ‘자청비’와 인연이 있는 곡물이다. 자청비는 천지왕에게 여자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해서 여자로 태어난다. 그리고 옥황 문곡성의 아들 문도령과 큰 공을 세워 천자에게 상으로 오곡 씨앗을 받는다. 그리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씨를 뿌리는데 씨앗 한 종류가 모자랐다. 다시 자청비가 하늘로 올라가 씨를 가져와 심으니, 다른 곡식보다 파종이 한 달 늦었지만 수확을 다른 곡식과 함께했다. 그 씨가 ‘메밀’이다. 제주말로 ‘모멀’이라고도 한다. 거친 흙에서도 잘 자라니 곶자왈로 이루어진 중산간에 적합했다. 여기에 푸른 잎, 붉은 줄기, 흰 꽃, 검은 열매, 노란 뿌리 5가지 색을 지닌 오방지영물로 알려졌다. ‘살아시민 살아진다(살다 보면 살아진다)’ 했던가. 중산간 마을의 큰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메밀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오롯이 제주 메밀만 ‘곱다시’ 차려 오가는 길손에게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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