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38] 재판 불출석과 법정의 권위
“분명 이길 수 있죠?”
“이오리, 걱정하지 말거라. 지더라도 깨끗이 지고 싶다고 바랄 뿐이다.”
“스승님. 이길 수 없으실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먼 나라로 빨리 떠나면….”
“세상 사람들의 말속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 네가 말하는 대로 어리석은 약속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는데 도망친다면 무사도를 저버리는 것이 된다. 무사도를 저버리는 것은 나 혼자만의 수치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까지 저버리는 것이 된다.”
-요시카와 에이지 ‘미야모토 무사시’ 중에서
당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한 야당 대표는 ‘잘못된 국정 운영을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대북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국방부 장관에게 ‘균형 감각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같은 날 그는 피고인 자리에 서야 하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엔 출석하지 않았다. 균형 감각을 갖고 정부를 심판하느라 자신이 심판받을 시간은 없었다.
단식투쟁을 시작으로 벌써 네 번째 결석이다. 부득이 재판에 참석하지 못할 수 있다. 2022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불출석 의견서를 내고 바이든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그러나 야당 대표는 국정감사를 핑계로 재판에 불참하고는 감사장에 나가지 않기도 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두 번째 재판 때는 지각했다.
일본의 난세를 살았던 미야모토 무사시는 세간의 출세와는 인연이 없었으나 검(劍)으로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바로 세우려던 무사였다. 그는 목숨을 건 60차례의 대결에서 한 번도 진 적 없을 만큼 강했지만 어떤 상대도 얕보지 않았고 비겁하게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는 ‘아무리 많은 적과 싸워 이겨도 원칙에 따른 것이 아니면 진정한 도(道)라고 할 수 없다’고 ‘오륜서’에 적었다. 북한은 품고 일본은 배척하는 야당 대표에게 ‘한낱’ 일본 검객의 무사도를 바란다면 큰 무례가 되려나.
권위주의 상징이라며 법정에서 사라진 의사봉을 날마다 힘차게 휘두르는 국회의원이 재판에 지각하면 “다음엔 일찍 오세요” 하고 판사는 당부한다. 결석하면 “오늘도 안 나오시는 겁니까?” 묻고 한숨만 쉰다. 재판에 성실히 임하리라 믿고 구속을 불허했던 영장 전담 부장판사는 권력 앞에 권위를 상실한 법정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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