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아듀, 미야자키 하야오

김동현 기자 2023. 11.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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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한 장면.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알게 된 건 초등학생 시절인 20년 전쯤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그가 제작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 개봉)’을 틀어줬는데, 미야자키 특유의 서정적 그림체와 처음 접한 일본 마을과 거리의 풍경을 보고 매료된 기억이 있다. 나뿐만 아닌 그때 영화를 본 또래 대부분이 그 영화를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를 새삼 보게 됐다.

미야자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지난달 25일 국내 개봉했다. 미야자키는 당초 2013년 ‘바람이 분다’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며 2017년 번복했다. 팬들 사이에선 “예상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 등 전작 개봉 때도 은퇴를 선언했다가 철회한 전례가 있어서다. 그러나 이번 신작 이후 팬들은 82세란 그의 나이와 최근 그가 세운 스튜디오 지브리가 민영방송 니혼테레비에 경영권이 넘어간 것을 고려해 “진짜 마지막일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지브리도 2017년 미야자키의 복귀를 밝히며 “이번이 정말 끝”이라고 했다.

개봉 직후 관람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도 미야자키의 은퇴를 암시하는 듯한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과거 작품에서 다룬 주제 의식을 한곳에 집약해 놓은 듯했는데, 적잖은 대목에서 미야자키가 직접 “내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야자키는 전작들에서 주로 사회를 향한 거대한 메시지들을 발산했다. ‘모노노케 히메’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란 주제 의식을 담았고, ‘센과 치히로’에선 ‘나 자신을 잃지 말라’는 울림 있는 교훈을 줬다. ‘이웃집 토토로’는 어른들에게 어린 시절 동심을 떠올리게 했고, ‘바람이 분다’는 과거 재해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의 생존력과 반전 의식을 그려냈다.

이처럼 거창한 주제 의식을 주로 담았던 미야자키가 이번 작품에 대해선 “손주가 자랑스러워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사회를 향한 메시지보다 자신의 은퇴기를 바라보는 가족에게 선물하고 싶은 작품이란 해석이다. 올 2월 일본에서 열린 비공개 시사회에서 그는 “보는 동안 뭐가 뭔지 이해가 안 가셨을 테죠. 솔직히 저도 그런 부분이 있었습니다”라고 털어놨다고 한다. 실제로 개봉 이후 관람객 상당수가 시공간을 넘나드는 내용 탓에 “난해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하지만 그의 제작 의도를 알고 보면 과거작들처럼 장면마다 치밀한 복선과 장치들로 교훈을 전하기보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손주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비교적 큰 부담 없이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소회와 사회 발언을 포개,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삶. 여든둘까지 평생 현역으로 살아온 이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을 더 많은 관객이 함께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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