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지방대 혁신, 실패한 길 또 가기

차용범 언론인 2023. 11.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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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범 언론인

국가의 존망을 다투는 세계경쟁 시대, 대학의 공적(公的) 책임은 날로 무겁다. 대학은 전통적 학문·연구의 자유를 넘어, 국가 발전에 기여할 사회적 역할을 요청받고 있다. 오늘의 대학은 국가·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고도의 지적 문화·기술을 창조·계승해야 하는 것이다. 제 몫을 다하는 대학의 존재는 한 국가의 성쇠(盛衰)를 가름 짓는 결정적 요소임이 분명하다.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superpower)이다. 강한 군사력·경제력으로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목적·의지·이익을 관철할 능력을 갖고 있다. 언론·학술 기관들은 미국의 독자적 지위를 ‘극초강대국(hyperpower)’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강대국은 어떻게 탄생하고 쇠락하는가?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고 권력을 지키는가? 강대국 체제에 관한 질문은 낯설지만 고민해야 할 주제다.

미국의 강국적 면모는 뚜렷하다. 월스트리트저널 톰 페어리스의 분석, ‘부자 미국-가난한 유럽…부(富) 격차 날로 커지는 이유’는 그 예다. 그는 급변하는 인구구조, 산업혁신 노력에 초점을 맞추며, 서구사회 양대 축의 운명을 가른 요인을 분석했다. 미국이 빠른 속도로 국부(國富)를 불리며 앞서 나갈 때, 유럽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며 경제적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의 GDP(국내총생산)는 EU 전체보다 훨씬 많다. 미국 50개 주의 1인당 GDP 순위에 유럽 국가를 넣으면 독일 39위, 프랑스 49위다.

결론은 명쾌하다. 미국은 세계 정상급 대학이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첨단기술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유럽은 기술 분야에서 별 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유럽은 ‘매그니피선트(magnificent) 7’, 그 테크기업(MS 애플 구글 등)이 포진한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미국은 산업혁신 위에 날로 기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지만 유럽은 상대적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두 지역 대학 교육의 질적 차이는 크다. 올 세계 대학평가에서 상위 30개 대학 중 19개가 미국 대학이다. 유럽 대학은 7곳, EU 27개 회원국 중엔 30위 뮌헨공대뿐이다. 유럽은 고등교육에 복지·평등 개념을 강조, 특출난 두뇌를 키우는데 약하다. 미국의 수준 높은 대학과 기업을 보고 능력과 야망 있는 젊은이들이 미국으로 몰려드는 것도 뚜렷한 현상이다. 그런 대학사(史)를 보면 한국의 강대국 도약 역시 대학혁신의 성공에 달려 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한국은 비수도권 대학 30곳을 ‘세계적 & 지역중심 대학’으로 육성할 ‘글로컬(Glocal) 대학 30’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과감하고 도전적인 혁신 목표, 세계적 경쟁력 구비 가능성 등을 평가, 곧 1차 선정 결과가 나올 것 같다. 그러나 그 정책에는 지난 세 정부가 10조 원을 쏟아붓고도 실패한 ‘지방대 살리기’의 데자뷔가 선명하다.

이번 정책, 우주항공산업 주력(경상국립대), 인공지능산업 주도(전남대), 국가 미래산업 구축(포항공대)과 같은 특화유형은 그나마 기대가 크다. 반면 1차 예비선정 15개 중 4개 사업은 대학 구조조정 정책과 비슷하다. 학령인구 급감, 지역격차 확대, 서울집중 극단화 속 부산대+부산교대(종합 교원양성체제 구축), 충북대+교통대(지역성장 견인), 강원대+강릉원주대(1도 1국립대 구축), 이런 구조조정에서 어떤 미래 먹거리 마련이며 청년 일자리 창출 같은 혁신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국내 대학 톱10은 모두 수도권 혹은 과학기술대학이다. 미국 일본 등의 명문 대학은 온 나라에 흩어져 있다. 지역에 우수한 대학이 많아 인재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덜하고, 대졸 인재들이 그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경향이 높다. 최근 한 대학 총장은 한탄했다. 한국 대학들이 오랫동안 규제와 관습에 갇혀 있는 사이, 중국 대학들은 ‘지방 살리기’ 차원의 실용·융합 교육을 서두르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대통령은 최근 ‘국민-정부 사이의 거대한 벽’을 걱정했다. 우리 대학들이 자율 없는 무사안일에 빠진 것 역시 그 정부의 독선적 정책 때문은 아니던가. 한국의 절박한 지방대 혁신, 정녕 무엇을 지향해야 할 것인지, ‘지방대 살리기’, 그 초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 참 걱정스럽고 생각할 바 많은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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