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불멸의 인장 찍는 작품 하나 남기려고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2023. 11.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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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내게 보내온 책들이 어느새 층층이 탑을 쌓아 위태롭다. 문제는 그 책들을 언제 다 읽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책을 보낸 시인이나 작가들은 내용을 읽고 서평이나 묵직하고 감동적인 답신을 보내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시집이야 대충 일별하고 그중 마음에 와닿는 시 한 편을 골라 촌평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소설집은 난감하다. 읽으려고 작정하고 책을 펼치면 누군가 또 다른 책을 보내와 답답한 가슴에 무거운 돌을 하나 더 얹는다. 아내는 늘 불평이다. 이따금 문간방을 들여다보며 이 많은 책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그 말속에서 보지도 않을 책을 쌓아놓기만 할 거냐는 핀잔을 읽어낸다. 수년 전에 몇백 권의 책을 기증해 대충 정리가 된 듯했는데, 어느새 다락방처럼 뒤죽박죽이다.

출판통계에 의하면 1년에 6만5000권의 새로운 책이 발간된다고 한다. 그중에는 문학 관련 책이 대부분일 것이다. 작가인 나도 이렇게 보내온 책을 아직 다 읽지도 않은 채 구석진 곳에 쌓아 두고 있는데, 보내온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독자들은 변방의 이름 없는 작가와 시인들의 책을 얼마나 읽을까 하는 회의가 밀려온다. 지원금 몇 푼 받아 책을 낸들 어느 누가 일일이 찾아 읽겠는가. 그저 또 한 권의 책을 냈다는 자기 위안밖에 더 되겠는가 말이다. 읽지도 않는 책을 이렇게 부득부득 낸다는 것은 멀쩡한 나무들만 쓰러뜨리는 무모함밖에 더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지난해 7월에 극약 처방을 하기로 했다. 여섯 번째 창작희곡집 ‘섬섬옥수’ 북 콘서트를 열었다. 이른바 고별 콘서트인 셈이었다. 앞으로는 희곡을 쓰지 않을 것이며, 이번 희곡집이 마지막이란 것을 지인들께 알리려는 심사였다. 그 여세를 몰아 내년엔 역시 여섯 번째 중단편 소설집 ‘사초’를 내고, 이제는 다시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고별 북 콘서트를 열 생각이다. 그래도 미련 같은 게 남아 희곡이나 소설의 청탁 원고는 쓸 생각이다. 거의 청탁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내가 쓴 작품을 누가 읽기는 읽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대답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희곡은 그래도 조금 괜찮은 편이다. 희곡은 연극의 텍스트이기 때문에 내가 쓴 희곡이 무대 위에서 공연될 때, 작가인 나는 객석에 관객과 함께 앉아 볼 수 있어 작품에 대한 관객의 호응도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 희곡 창작에 더욱 힘을 쏟았는지 모른다. 희곡은 독자의 반응을 공연 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현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동료 작가들도 내 소설을 잘 읽지 않는데, 일반 독자들이 지역의 이름 없는 작가의 소설을 누가 찾아서 읽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자기 위안을 일삼는 책을 출판하는 따위의 무모한 짓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고별 북 콘서트를 열겠다는 것이다.

나는 연간 10권에서 스무 권이 넘는 동화를 써내는 작가들의 열정에 탄복한다. 상상력의 화수분을 지닌 채 공장에서 기계로 제품을 찍어내듯 동화를 쓰는 작가들의 열정과 의지를 존경해 마지않는다. 그렇게 많이 써내는 것은 어쩌면 그 많은 작품 중에서 독자들의 기억에 불멸의 인장을 찍을 수 있는 한두 작품을 얻어내기 위한 시시포스의 행위일지도 모른다고 좋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작가에 대한 평가는 죽어 관 뚜껑을 덮은 뒤에야 내려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죽어 그 작가의 이름을 거명할 때 “아! 그 작품을 쓴 작가 말이죠?” 하고 독자들에게 기억되는 작가는 성공한 축에 든다. 그 한두 작품을 얻기 위해 우리는 몇십 년 동안 수많은 작품을 쓰면서 책을 내오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 나는 아직도 목마르다. 머리맡 가까이에 애지중지 놓인 채 생각날 때마다 두고두고 읽히는 그런 작품 한 편을 꼭 쓰고 싶다. 독자의 기억 속에 불멸의 인장을 찍을 수 있는 그런 작품 하나 남기려고 오늘도 나는 작품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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