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강원권 문화유산,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전문적 손길 필요
강릉시가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국립문화재연구원 강릉연구소’ 유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지난 4월 경포호 주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보물 ‘경포대’ 소실 위기를 겪은 후 필요성을 절감하고, 9월 경주에서 열린 지자체 국가유산 담당 공무원 워크숍에서 유치의 시급성을 피력했다. 이 제안은 재난에 노출된 문화유산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광역시·도별로 반드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설립돼야만 한다는 공감대 형성의 계기가 됐다.
강릉지역 재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을 보면, 강릉을 포함한 영동지역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강풍·폭우·폭설·산불 등의 재해가 빈번했던 사실이 확인된다. 현대에 와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블록버스터급 영화에나 나올법한 대규모 재해들이 발생하고 그 심각성이 고조에 달해있다. 다른 지역도 그렇지만, 특히 영동지역은 기후변화와 재난으로 인한 문화유산의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2005년 양양산불로 중요 지정문화재가 다수 소장된 낙산사가 화마에 휩싸였고, 보물 낙산사 동종이 녹아 버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경포호 주변 산불에서도 보물 경포대를 가까스로 지켜냈다. 그러나 강릉 선비들이 결성한 강학계(講學契)의 표상 중 하나인 상영정(觴詠亭)이 전소됐다. 진화 과정에서 문화유산 관리 허점의 일면도 드러냈다. 상영정은 소위 비지정문화재다. 국가의 관리책무가 없는, 제도권 밖의 문화유산이다. 상영정은 지정문화재에 필수 설치된 소화전조차 없어 다른 곳의 소화 호스를 끌어다 진화하려 했지만, 결국 참사를 면치 못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마 전 제정되어 2024년 5월 17일 시행을 앞둔 국가유산기본법에 “미래에 국가유산이 될 잠재성이 있는 자원을 선제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규정”이 담긴 것이다. 법에서 규정한 자원이 바로 그동안 홀대 아닌 홀대를 받았던 상영정과 같은 비지정문화재다.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비지정문화재까지 국가가 관리·보호하겠다는 의지가 법에 반영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강릉시는 문향과 예향, 전통문화 도시의 정체성에 걸맞게 강원 18개 시·군 중 가장 많은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법이 규정한 ‘미래에 국가유산이 될 잠재성 있는 자원’은 더 많다. 이 법이 시행되면 강릉시가 관리해야 할 문화유산이 광범위해져서 책무가 막중해지는 동시에 강원지역 문화유산의 메카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다만, 강릉시가 제기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강릉 개설 화두는 비단 강릉의 문화유산만을 체계적으로 보호·연구할 기회를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다. 강원특별자치도 전체의 문화유산 보호·연구를 위해 도내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치가 절실하다는 대승적 차원의 필요성 제기다. 그간 지자체 능력만으로는 지역 문화유산의 체계적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가 늘 제기됐고, 문화재청은 이를 해소하고자 1990년 경주·부여·가야문화재연구소 동시 개소를 시작으로 국립문화재연구원 산하 지방연구소 7곳을 설립했다. 현재 광역시·도 중 강원·제주에만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없다.
강원지역은 충주의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 관할해 왔으나, 이곳도 강원지역의 국립문화재연구소 설립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각계에서 제기되어 왔고, 도민 누구나 지지할 일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가장 많은 지정·비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이상기후로 인한 대규모 재난이 자주 발생하는 강릉이 연구소의 적지라는 점이다.
지방 국립문화재연구소 설립의 궁극적 목적은 그 지역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체계적인 학술조사·연구를 통해 그동안 부족했던 지역 문화권의 실체를 정립하는데 있다.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어 문화유산을 연구·조사·발굴·복원해 그 가치를 알리고자 2021년 제정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취지와 상보적으로 부합된다.
국가유산기본법 제정, 기후 위기 등 문화유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산하는 시점에서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전문적인 손길을 원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에 국립문화재연구소 설립은 꼭 필요하고, 그렇게 되길 고대한다. 다만, 설립이 결정된다면 연구소를 가장 절실히 요하고, 목적에 부합하는 책무를 다하며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적지가 과연 어디인지 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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