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도 아는데[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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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작가 아디니아 시블리의 '사소한 일'에는 거창한 것보다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사소한 것에만 관심이 있다.
"염소도 다른 염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면 알아차리는데, 사람들이 그럴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염소들하고만 얘기해야겠네요." 이것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둔 형제들이 가자지구에서 서로에게 잔혹한 복수극을 벌이며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부조리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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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는 반세기도 더 전인 1949년 8월 13일에 있었던 일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게 된다. 네게브 사막에 주둔하던 이스라엘 군인들이 아랍인 소녀를 성적으로 유린하고 죽여서 파묻은 사건이다. 그는 유대인들의 폭력에 익숙해 있어서인지 그 사건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녀가 죽은 날이 자기가 태어난 날과 같다는 사소한 사실에 더 관심이 간다. 중심보다는 주변을, 그림보다는 그림 위에 앉은 파리를 보는 평소의 성격답게, 그 사소한 우연이 서안지구에 사는 그를 네게브 사막으로 이끈다. 진실이 그러한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유대인은 소녀에 관해 다른 이야기를 한다. 행실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아랍인들이 소녀를 죽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어쨌거나 그는 군사지역이라는 표지판을 보고도 역사 속의 현장을 향한 자신의 걸음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러자 이스라엘 군인들이 쏜 총알이 그를 향해 날아온다. 그는 반세기 전의 소녀와 거의 같은 곳에서 죽임을 당한다.
이 소설에서 반세기 전에 소녀가 죽은 날과 생일이 겹치는 여성이 죽는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이 반복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알레고리적 설정이다. 세상은 지난 75년 동안 그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다. 작가는 묻는다. “염소도 다른 염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면 알아차리는데, 사람들이 그럴 수 없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염소들하고만 얘기해야겠네요.” 이것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둔 형제들이 가자지구에서 서로에게 잔혹한 복수극을 벌이며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부조리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조상이 같은 형제들인데 내 편 네 편 따지지 말고,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말대로 “잘잘못에 관한 생각 너머의 들판에서” 서로를 만날 수는 없는 걸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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