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형제섬에 들다
신도선착장에 도착했다. 출발 10분 전이다. 그런데 배가 없다. 그런데 장봉도가 보이는 바다에도 오는 배는 보이지 않는다. 장봉도에서 오고 있어야 할 배는 벌써 삼목선착장으로 달아나고 있다. 10분 전에 출발했단다. 배가 홀수 일과 짝수 일에 따라 출발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터미널 가게 주인이 알려줘서 알았다. 이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늦은 김에 커피나 마실까.
삼형제섬은 옹진군 북도면에 있는 신도, 시도, 모도 세 섬을 말한다. 삼둥이섬이라고도 한다. 서로 잇대어 자리하고 손을 맞잡은 것처럼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그렇게 부른다. 장봉도는 따로 떨어져 있다.
그중 가장 큰 섬은 신도, 다음은 시도 그리고 가장 작은 섬은 모도다. 물론 섬이 작다고 경제력이나 가치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 면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의미이다. 이들 섬은 영종도 삼목항에서 배를 타면 갈 수 있다.
인천시 옹진군에 속하는 섬 중에서 연안부두가 아닌 곳에서 출발하는 섬은 영흥도와 장봉도, 삼형제섬뿐이다. 다리가 놓이기 전이나 인천공항으로 뱃길이 막히기 전에는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로 다니는 배를 타고 연안부두에 닿았다. 공항 건설로 연안부두를 오가는 여객선이 사라지면서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카페리호가 오가고 있다.
교통만이 아니라 교육에서도 옹진군 관내의 초등학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천 중구에 속한 초등학교의 분교로 되어 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영종국제도시로 배정을 받는다. 이렇게 뱃길이 바뀌면서 행정구역과 생활권이 다르다.
오랜만에 삼형제섬을 찾은 것은 시도에 있는 염전 때문이다. 가는 길에 들른 신도의 새우양식장도 과거에 염전이었다. ‘여기가 전부 염전이었죠. 저쪽에 논이 있던 곳도’, 아버지와 새우양식장을 운영하는 젊은 주인이 싱싱한 새우를 그물로 잡아내며 말했다.
1990년대 소금시장 개방을 앞두고 염전을 폐전하면 지원해 주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때 폐전된 염전 중 개발되지 않는 곳은 양식장으로 전환되었다.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새우양식장이었다. 양식장 옆 신도3리는 지명이 염촌이다. 혹시 옛날에 소금을 구웠던 것은 아닐까. 그곳도 천일염전이 있었다. 모도의 띠염이라는 마을 앞도 염전을 했던 곳이다. 삼형제섬은 모두 동쪽은 갯벌이 발달하고 북동쪽은 바위나 모래해변이다. 갯벌이 발달한 곳은 어김없이 염전이 만들어졌었다.
전국 최초의 수중 방갈로, 시도해수욕장
시도는 1970년대 초반 살섬으로 불렸다. 강화도에서 무사들이 수련할 때 시도를 목표로 활을 쏘아서 ‘살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서해에서 ‘살’은 고기잡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용어다. 살섬은 고기를 잡는 어살을 의미할 수도 있다. 섬과 섬 사이 폭이 넓지 않고 조류가 빠르며 아주 깊지 않다면 살을 설치하기 좋은 장소다. 살은 서남해나 남해에서는 발이라고도 한다. 죽방렴도 어살의 일종이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고려말 최영과 이성계가 마니산에 올라 시도를 과녁 삼아 활을 쏘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시도는 염전보다 더 유명한 곳이 ‘풀하우스’와 ‘슬픈연가’를 촬영한 드라마 세트장이다. 처음 이 섬을 찾았을 때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았었다. 이제 그 흔적은 많이 사라졌지만 빛바랜 외상장부처럼 해안에 그 옹이를 품고 있다.
시도에는 1970년대 한때 을왕리, 서포리와 함께 인천을 대표하는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었다. 심지어 샤워장, 디스코장, 보트장, 미니골프장, 방갈로 등 편의 시설을 갖췄었다. 성수기에는 배가 지금보다 더 자주 오갔다. 당시 전국 해수욕장 중 소개된 곳은 낙산, 북평, 대진, 일산, 가포, 만성리, 율포, 신지도, 가마미, 변산, 비인, 무창포, 난지도, 을왕리, 작약도 그리고 시도 해수욕장이 소개되었다. 당시 소개된 시도해수욕장 관련 내용이다(조선. 1970.7.19.).
인천에서 서쪽으로 30㎞쯤 떨어진 곳. 새한상사에서 금년 처음으로 개발한 곳으로 샤워장과 50여 개의 크고 작은 텐트가 마련된 조용한 수영장이다. 교통은 서울 삼일로 하니문센터에서 매일 1회 왕복의 정기관광버스와 선박을 운행하고 있다.
시도풀장도 알려진 곳으로, 높이 5미터, 길이 750m 인공둑을 시도 앞 바다에 쌓아 넓이 4만 1000평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입장료 100원을 받고 숙박, 식당, 샤워, 보트놀이, 골프 등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둑을 쌓았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방갈로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인천에서 70톤급 여객선 2척이 수시로 다니고, 서울에서는 고속버스가 운행했다. 자가발전으로 전기 시설까지 갖추었다.
이제 모도에 가보자. 처음 모도를 방문할 때는 순전히 배미꾸미에 있는 이일호 작가의 야외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섬은 면적이 810㎡에 불과하다. 시도와 모도, 두 섬 사이에 잠수교가 있었다.
한때는 바닷물이 차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건너가야 했다. 시도와 사이가 좁고 조류가 빠른 탓에 무동력선을 배치해 그물을 걸어 놓고 멸치나 새우를 잡았다. 주민들은 중선배라고 했는데, 해선망이다. 동력이 없어 멍텅구리배라고도 했다. 신도 사람들이 멀리 배를 가지고 가서 조기도 잡고 민어도 잡았지만 모도 사람들은 집 앞에 그물을 놓아 고기를 잡았다. 당시 사진을 보면 그 흔적이 잘 남아 있다.
망둑어와 소라의 만남
신도항에서 자전거를 타고 신도를 둘러보고, 시도 해수욕장과 수기전망대를 돌아 도착하는 곳은 모도 소공원이다.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선정된 곳이다. 모도에 도착하면 배미꾸미 조각공원을 찾아보는 것도 권한다. 사유지로 조각가 이일호가 활동하면서 작업을 했던 곳이자 작품전시장이다. 지금은 카페와 펜션도 운영하고 있다. 조각공원에 입장하려면 약간의 입장료가 있다. 배미꾸미는 작가가 두 번째 작업실로 삼았던 곳으로 아름답게 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카페에서는 간단한 식사와 브런치와 음료를 맛볼 수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야외작품선시장을 돌아보고 그곳 식당에서 해초비빔밥을 먹었다. 이번에는 메뉴를 바꿨다. 소라비빔밥과 소라물회를 주문했다.
신도와 시도 사이 바다는 갯골과 갯벌이 발달했다. 삼형제 섬 중에서 가장 너른 갯벌이 펼쳐져 있다. 갯벌 너머 동북쪽으로 강화도 남단 갯벌과 동검도로 이어진다. 다리 위에서 멈췄다. 섬이라 오가는 차가 없어 가능했다. 다리 난간 너머로 망둑어 낚시를 하는 사람을 발견한 탓이다. 한때 조기도 흔했고, 어린아이만 한 민어가 잡혔다는 섬에서 망둑어라니. 짧게는 두 세대, 길게는 세 세대 만에 벌어진 일이다. 신도에는 조기 잡는 중선배가 많았고, 모도에는 새우잡이 배가 10여 척이나 되었다. 신도나 시도에는 염전도 많았다. 섬놈이라고 무시하는 인천 시내에 나가지 않아도 고기를 얻으러 오는 운반선에 필요한 생필품이 실려 왔고, 이웃 영종도에 붙지 않아도 자존감을 세울 수 있었다.
조기를 가져가고, 민어도 가져가고 이제 남은 것은 갯골에 망둑어와 갯벌에 소라만 남았다. 모도 주민들의 반찬이었지만 이것마저 내놓으라고 야단이다. 망둑어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주민들보다는 외지인이다. 망둑어나 소라는 치어나 치패를 놓아기른 것도 아니고 누가 먹이를 준 것도 아니다. 누가 잡아가도 뭐라 할 일은 아니다.
다만 마을어장에서 잡는 것은 주의를 해야 한다. 마을어장은 어민들에게 텃밭처럼 이용권을 준 곳이다. 우선 점유해서 이용할 권리를 섬과 바닷가에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준 것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조기를 가져가고 민어를 가져가고 남은 것이다.
마을주민들은 소라를 잡아 인근 식당에 팔고, 망둑어를 잡아 말렸다가 겨울철 반찬으로 삼는다. 도시에서처럼 어시장에서 생선을 사고, 마트에서 채소를 사지 않는다. 텃밭과 마을어장에서 얻는다. 지속 가능한 어촌은 이를 지켜주는 일이다.
늦기 전에 ‘삼형제길’을 걸어보자.
사단법인 섬연구소에서 우리나라 ‘백섬백길 95’로 ‘신시모도 삼형제길’을 소개했다. 그 길이는 9.6㎞, 3시간이 소요되는 난이도 중의 섬길이다. 그 길에서 갯벌은 물론 해당화, 천일염, 칠게, 농게, 망둑어, 논 등을 만날 수 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걷는 것이 힘들다면 자전거를 타고 달려도 좋다. 가족여행이라면 자동차를 타고 가도 나쁘지 않다. 어느 쪽을 택하든 하룻밤은 섬에서 묵어보자. 그러면 그 섬이 특별해진다. 삼형제길 소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신도-시도-모도 세 섬은 다리로 이어져 있어 ‘신시모도’나 ‘형제섬’이라고 불린다. 수도권 섬에서는 보기 드문 염전을 해당화 꽃길을 따라 아직 볼 수 있고, 낮은 산을 따라 걷는 등산로와 아기자기한 임도, 갯벌을 따라 걷는 길 등 시시각각 걷는 길의 형태와 풍경이 변한다.
길이 대체로 평평하고 완만하여 라이딩을 하는 분들도 많을 정도니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길이라 할 수 있다. 배로 10분 거리이고 섬 곳곳을 다니는 버스가 있으니 더욱 부담이 줄어든다. 곧 영종도에서 신도로 이어지는 다리가 놓인다고 하니 섬일 때 그 매력을 온전히 느껴보길 바란다.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30여년 동안 섬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문화 관련 정책연구를 한 후, 지금은 전남대학교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어촌공동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는 바다인문학, 바닷마을인문학,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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