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모두를 위한 기도

2023. 10. 3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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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단체 채팅방에 글을 올렸다.

그 아이가 나타난 곳은 그 단체 모임방이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팬데믹으로 또다시 속절없이 흘려보내야 했던 그 시간들은 그 아이 또래들에게는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어쨌든 나는 그 아이가 올린 메시지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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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오랜 침묵을 깨고 단체 채팅방에 글을 올렸다. 그 모임방은 나하고 같이 문학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 만든 소통창구였다. 한 지방 도시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개설된 문학동아리에서 우리는 함께 읽고 토론하며 한때의 시간들을 보냈었다. 구성원들의 연령은 다양했고, 각기 하는 일도 달라 여러 가지로 활기가 넘쳤다. 그 아이가 나타난 곳은 그 단체 모임방이었다. 그 모임은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자생력을 가지고 계속해서 운영되고 있었고 더 많은 사람이 합류해 제법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 이름도 언제부턴가 그 단체방 명단에 들어있었다. 활동이 왕성한 만큼 모임방의 알림은 부산스러웠다.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이야기들이 살짝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데 며칠 전,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 아이가 글을 올렸다. 그것은 부탁이었다.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것도 놀라웠는데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니. 그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왜 그게 비밀로 해야 할 일일까. 오히려 그 용기와 태도가 가상하고 믿음직스러운데.

그 아이와의 인연은 특별했다. 팬데믹 이전까지 나는 지방의 한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었다. 지방에서는 명문 사립으로 통하는 학교였고, 나는 그곳에서 전공과목을 맡아 가르쳤었다. 그 아이는 내 수업을 받던 학생이었다. 말수가 적었고 행동도 차분했으며 표정은 어딘지 우울해 보이던 아이였다. 소설을 쓰고 싶다던 그 아이는 자신의 습작원고를 가져와 수줍게 내밀었다. 중편 분량의 소설은 첫 작품이었지만 나름대로 완성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졸업했고, 소식이 끊겼고, 나중에 그 모임에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됐다. 우선 반가웠다. 잘 있었구나. 팬데믹, 그 고난의 시간에도 잘 견뎌주었구나. 고마웠다. 이십 대, 그 생의 한 시기를 외부와 단절된 채 보내야만 했던, 그 무위의 시간들이 얼마나 아쉽고 또 억울할까. 군대를 다녀오고, 팬데믹으로 또다시 속절없이 흘려보내야 했던 그 시간들은 그 아이 또래들에게는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그렇듯 인생을 설계하고 가열하게 움직여야 할 청춘의 시간을 무력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으니 그 아이가 가졌을 심리적 타격과 우울함이 얼마만큼 클지 가늠할 수 없다. 어쨌든 나는 그 아이가 올린 메시지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읽는 동안 자꾸만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 자영업자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그 아이는 괜찮을까. 마음먹고 새출발을 했는데 힘들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지 않던가. 그 아이가 부디 기운과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원하는 목표를 이뤘으면 좋겠다. 그 아이의 생애에 큰 고난이 없기를 기도해야겠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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