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수요 정체에…글로벌 업계, 투자 속도 조절

이재덕 기자 2023. 10. 3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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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인하 경쟁, 수익성 악화 우려…전동화 ‘시기상조론’ 확산
혼다·GM, 보급형 공동 개발 계획 철회…포드는 투자 금액 축소
신규 공장 가동도 늦춰…현대차·기아는 ‘퍼스트 무버’ 전략 고수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혼다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투자 계획을 수정하거나 투자액을 낮추는 등 전동화 완급 조절에 나섰다. 최근 전기차 성장률 둔화에 저가 경쟁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먼저 투자를 늘리며 ‘퍼스트 무버’ 대열에 선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기존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며 버텨내기로 했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대표이사(CEO)는 최근 일본 도쿄 혼다 본사에서 한국 언론과 간담회를 열고 “지난해부터 GM과 공동으로 보급형 전기차에 대한 연구·개발(R&D)을 이어왔지만, 작은 배터리를 장착한 보급형 전기차는 비용과 사업성 부분에서 난도가 높다”며 “양사가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혼다와 GM은 북미에서 GM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활용해 보급형 전기차를 공동 개발키로 했지만 지난 25일 이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미베 CEO는 간담회에서 “사업성을 감안해 중지에 이른 것”이라며 “(보급형 전기차는) 양사가 각각 갖고 있는 기술로 대응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GM의 전용 플랫폼으로 북미 시장을 공략하려 했던 혼다의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혼다가 북미에서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차(HEV) 공급을 확대할 가능성도 나온다.

앞서 GM은 지난해 중반부터 내년 중반까지 전기차 40만대를 생산하기로 했던 계획을 취소하고, 미국 미시간주에 짓기로 한 전기차 전용공장 가동 시점도 1년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포드도 전기차 투자액을 줄이고 SK온과 미국 켄터키주에 건설하는 2번째 배터리 공장 개장을 연기하기로 했다.

전기차는 매년 판매량이 늘고 있지만 보조금 감소, 고금리, 부족한 충전 인프라 등으로 올해 들어 성장률이 둔화하기 시작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전기차 인도량은 2021년 상반기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123.6% 증가했지만 지난해 상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는 42.7% 증가에 그쳤다. 북미 시장에서도 같은 기간 전기차 인도량 증가율이 54.7%에서 53.2%로 낮아져 둔화가 가시화했다.

더구나 저가 중국차 공세 속에 테슬라가 지난해 말부터 전기차 가격을 적극 인하하면서 업계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해 전기차 130만대를 판매하는 등 대량생산으로 생산 비용을 상당히 절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가는 계속 줄어 지난해 말 1대당 3만9500달러(약 5340만원)였던 것이 지난 9월 말 3만7500달러(약 5070만원) 수준으로 내려갔다.

반면 GM·포드 등은 전기차 판매량이 수만~수십만대 수준으로 원가 절감에 한계가 있다. 여기에다 전미자동차노조(UAW)와의 임금 협상 결과, GM·포드·스텔란티스 노동자 임금이 약 25% 인상된 것도 원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게 돼 설상가상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출혈 경쟁을 이어가던 미국 완성차회사들이 수익성 악화, 임금 인상 등으로 전기차 투자를 다소 보류하는 입장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단기적인 조정일 뿐 전기차 판매를 늘리기 위한 노력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업체들의 속도 조절 속에 유럽연합(EU)이 2035년 목표로 내연기관차를 퇴출하기로 하고, 미국이 연비 기준을 강화하며 전기차 시장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원대한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지도 관심거리다.

현대차·기아는 2030년 전기차 360만대 판매 등 기존 전기차 목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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