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 밀어붙이기…과학계 ‘부글부글’
“ ‘삭감액으로 복지’ 논리 의아”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방침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 하면서 과학계가 반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R&D 예산은 2019년부터 3년간 20조원 수준에서 30조원까지 양적으로 10조원이나 대폭 증가했으나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질적인 개선과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정부는 내년 R&D 예산을 올해보다 16.6%(5조2000억원) 줄인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고, 이날 윤 대통령이 이 같은 방침에 못을 박은 모양새다.
과학계는 이번 시정연설에 대폭 삭감한 내년 정부 R&D 예산안을 고수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을 중심으로 한 과학계가 지난 8월 이후 R&D 예산 삭감이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냈지만, 사실상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격이다. 이어확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 공동대표는 “정부는 (R&D 예산 삭감을 추진하는 논리로) 비효율적 관리 체계를 얘기하지만, R&D 예산을 수조원 줄여야 할 정도의 분명한 문제 사례들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최근 과학계 현장 간담회를 하고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얘기도 전달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R&D 예산 삭감은 지난 6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과학계와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R&D 분야가 ‘카르텔’이 있는 곳으로 지목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기획재정부의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정부 R&D가 올해와 같은 31조원대로 회복되는 것은 2027년이다.
이날 윤 대통령이 R&D 예산을 삭감해 복지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에 대해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일단 이번에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3조4000억원은 약 300만명의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더 두껍게 지원하는 데 배정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액수인 ‘3조4000억원’은 과기정통부가 관리하는 내년 ‘주요 R&D 예산’ 삭감액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이 공동대표는 “복지 예산을 늘리는 일은 R&D 예산 삭감과는 별도로 가는 것이 온당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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