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 북부 포위 나선 듯…인질 협상 여지 두며 '느린 진격'

2023. 10. 3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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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지상 작전으로 인질 첫 구출…UN 기구 "하마스의 잔혹 행위, 이스라엘의 국제인도법 준수 의무 면제 안 해"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를 포위하는 방식으로 지상 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인질 협상 여지를 남기고 민간인 피해 관련 국제적 압박을 모면하기 위해 작전이 길고 느린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30일(현지시각)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내 자국군 위치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로이터> 통신은 전문가 의견, 목격 증언 등을 토대로 이스라엘이 가자 북부의 북쪽과 동쪽 방면에서 진입해 북부 대도시 가자시티를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쪽 국경으로 진입한 지상군 한 축이 "인치 및 미터 단위"로 수십 대의 전차(탱크)와 장갑차와 함께 천천히 전진하는 동안 다른 한 축은 하마스 지하 땅굴 입구에서 제한적 교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29일 이스라엘군은 가자 북부와 이스라엘을 잇는 에레즈 검문소 인근에서 "땅굴 통로를 빠져 나오는 다수의 테러리스트"와 전투를 벌여 제거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500km 가량의 땅굴 네트워크를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쪽은 지상전의 핵심이 될 것으로 관측되는 땅굴 공략에 아직 본격적으로 나서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쪽에서 진입한 지상군은 가자시티를 남쪽으로부터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관련해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살라 알딘 도로 네차림 분기점(JC) 인근을 이스라엘 전차가 가로 막고 있었다는 목격 증언 및 영상이 공개된 상태다. 영상을 촬영한 언론인 유세프 알 사이피와 함께 동행한 동료 언론인 바샤르 탈리브는 30일 <워싱턴포스트>(WP)에 이날 오전 살라 알딘 도로를 타고 가자시티를 향해 북쪽으로 달리던 중 "네차림 분기점에 이스라엘 전차와 불도저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들이 공개한 영상엔 이스라엘 장갑차가 민간 차량에 포격을 가하는 장면이 담겼는데 관련해 니르 디나르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미 CNN 방송에 "해당 차량 안에 테러리스트가 없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하마스는 민간 장비를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명했다. 알 사이피는 이스라엘 전차가 네차림 분기점에 정차한 채 "다가오는 모든 이를 겨냥했다"며 "자동차와 버스도 타깃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군이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이 239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가운데 지상 작전이 예상보다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인질 협상을 위한 여지를 남기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는 이스라엘 안보 소식통의 평가를 인용, 이스라엘이 지상군 전체를 가자지구 시가지로 곧장 투입하지 않는 것은 장기전으로 하마스 지도부를 소진시키고 인질 협상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또 천천히 전진하며 복잡한 가자지구 땅굴이나 시가지로 직접 들어가기 보다 하마스 전투원들이 밖으로 나와 개방된 지형에서 교전하기를 바라는 전략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익명을 요구한 전직 고위 사령관이 통신에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30일 밤사이 지상 작전을 통해 하마스가 억류한 인질 1명을 구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군은 지난 7일 납치된 이스라엘 군인 오리 메기디시(19) 이등병이 건강 진단 뒤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고 이스라엘 보안 기관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 뒤 이스라엘 남부 키르야트 가트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군은 메기디시가 감금돼 있던 위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매체는 이스라엘 언론 <Ynet>을 인용해 메기디시가 가자지구 북부와 인접한 나할 오즈에 위치한 부대에서 가자지구 국경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를 분석하는 감시 업무를 맡고 있었고 지난 7일 하마스가 이 기지를 잠시 점령하면서 납치됐다고 전했다.

지난주 유엔 총회가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는 구속력 없는 결의안을 채택한 가운데 국제사회의 비난을 덜 받는 것도 느린 진격의 목적 중 하나로 보인다. 해당 결의안에 미국은 반대했지만 프랑스, 스페인, 노르웨이, 포르투갈 등 유럽 국가 일부는 찬성표를 던졌다. 가자지구 사망자가 급속도로 불어나며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 내부에서까지 공격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도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을 강하게 지지해 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점차 이스라엘 쪽에 "민간인 보호를 우선시하는 국제인도법 준수"를 강조하는 중이다. 뉴욕타임스는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예상보다 제한된 형태의 지상 공격이 최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이스라엘 쪽에 제안한 방식에 부합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역내 확전 우려가 계속해서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슬람권 국가들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해 보인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일부 외교정책 전문가들이 지난해 히잡 시위 뒤 국내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이란 등 이슬람권 국가들이 내부 문제 탓에 이번 분쟁에 참전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30일까지 가자지구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이 8309명으로 불어나며 유엔(UN) 기구들은 이날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했다. 이스라엘 쪽에서 숨진 1400명을 포함하면 양쪽 사망자 수는 1만 명 가까이 된다.

필립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은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가자에는 안전한 곳이 없다"며 "하마스의 잔혹 행위가 이스라엘의 국제인도법 준수 의무를 면제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회, 이슬람 사원, 병원, UNRWA 시설 등 국제인도법에 의해 보호 받는 장소에 대피한 난민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고 지적하며 가자지구에 "집단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날까지 어린이 3200명이 사망한 자료를 들며 이는 "부수적 피해" 수준으로 치부될 수 없다고도 했다. 이스라엘 공격으로 UNRWA 직원 64명도 목숨을 잃었다. 그는 가자에 현재 들어오는 물자는 수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실질적인 지원을 위한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했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사무차장 대신 안보리에서 발언한 리사 도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인도주의 기금 및 자원 동원 국장은 신속하고 충분한 구호 전달을 위해 현재 개방된 이집트와 가자지구 남부를 잇는 라파 검문소 외에도 가자지구 남부와 이스라엘을 잇는 케렘 샬롬 검문소를 추가로 개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인도주의적 일시 중지를 촉구하는 동시에 전투 중지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국제인도법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튼 국장은 또 이스라엘 당국이 가자지구 북부에 위치한 알쿠드스 병원 등에 대피를 요구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를 옮기는 것은 거의 확실한 사형 선고"라고 지적했다. 전날 팔레스타인의 적십자 격인 적신월사는 이스라엘 쪽으로부터 폭격이 있을 예정이므로 즉시 대피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환자 생명 보호를 위해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 병원엔 환자 외에도 1만4000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대피 중이다.

적신월사는 이후 이스라엘군이 대피를 강요하기 위해 알쿠드스 병원 인근에 고의로 폭격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연기로 가득 찬 병원 내부 영상을 공개했다. 27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시티에 위치한 가자지구 최대 규모 병원인 알시파 병원에 하마스 지휘 센터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마스 쪽은 부인했다.

30일 안보리 회의는 이스라엘이 주말 가자지구 지상전을 확대함에 따라 아랍에미리트(UAE)와 중국의 요청에 따라 소집됐다. 이미 네 차례나 휴전 결의안 채택에 실패한 안보리는 이날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이 점점 거세지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30일 연설에서 "성경은 전쟁을 위한 때와 평화를 위한 때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전쟁을 위한 때"라며 휴전 요구를 일축했다. 그는 "미국이 진주만 폭격이나 9·11 테러 뒤 휴전에 동의하지 않은 것처럼 이스라엘도 10월7일의 끔찍한 공격 뒤 하마스와의 휴전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30일(현지시각) 이스라엘 군용 차량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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