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한국X도 아니면서”
개화기 조선엔 콜레라가 창궐했다. 사경을 헤매던 조선인들은 미국 선교사가 세운 병원에 몰려갔다. 그들이 병원에서 본 것은 앞선 의술만이 아니었다. 외국 의료진은 밤새워 환자를 돌봤고, 환자가 죽으면 울었다. 이방인이 흘리는 눈물을 본 조선인들은 “이 외국인들이 하는 것만큼 우리는 우리 가족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을까?”라며 놀라워했다. 의료 선교사 릴리어스 언더우드가 쓴 ‘상투 튼 이들과 함께한 15년’에 나오는 얘기다.
▶핼러윈 참사 1주기 행사에 참석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향해 누군가 “한국 X도 아니면서 여기가 어디라고 와”라고 외쳤다. 인 위원장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 귀화한 한국인이다. 세브란스병원은 그가 평생 봉직한 직장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그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그런데 단지 생김새가 다르다고 한국인이 아니라고 한다. 희생자 애도에 생김새가 무슨 상관인가.
▶국적과 민족은 별개 문제다. 하지만 한국인은 오랜 세월 ‘한국인=한민족’이라는 선입견에 갇혀 살았다. 1950년대까지 폐쇄된 나라의 우물 안 개구리였던 탓이다. 한 나라에서 최대 다수인 민족이 인구의 85%를 넘으면 단일 민족국가로 보는데 한국은 이 비율이 96%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든다. 그러니 피부색이 다르면 ‘한국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종에 대한 시각도 비정상적이다. 얼마 전 백인 남성과 결혼해 유럽으로 여행 간 한국 여성은 “아무도 우리 부부에게 관심 없는데 한국 관광객들만 힐끔거리며 우리를 보더라”고 했다.
▶세계 많은 나라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국적과 인종을 다른 문제로 여긴다. 인종이 달라도 얼마든지 같은 국민으로 살고 나라도 함께 지킨다. 이스라엘군의 10%는 흑인이다. 영국 현 총리는 부모가 인도 출신이지만 자신은 ‘영국인’일 뿐 ‘인도 출신’이란 데에 별 관심도 없다고 한다. 지난 여름 삿포로에서 백인 여성이 일본어로 안내했다. “일본인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한국도 다인종 국가로 가고 있다. 2000년까지만 해도 연평균 34명에 불과했던 귀화자가 2010년부터 연 1만2000명을 넘는다. 외국인 200만명이 우리와 함께한다. 국민 의식도 바뀌고 있다. K팝 아이돌에 외국인이 처음 포함됐을 때 ‘한국인이 부르지 않은 노래가 K팝이냐?’던 팬들이 지금은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K팝 걸그룹 노래를 따라 부른다. 영국 출신 마이클 브린은 저서에서 “한국인은 국적부터 따진다”고 비판했다. 덧붙이면 피부색도 너무 따진다. 이젠 벗어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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