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박정희를 왜 또 부를까
산업화와 민주주의가 도마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박정희 추모식에 참석해 그가 이룬 “산업화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질문.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주역은 박정희였나? 일찍이 손호철은 동아시아 네 마리 용의 고도성장은 박정희 등 개발 독재 지도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가를 키우게 된 농지개혁(한국과 대만) 혹은 지주계급의 부재(홍콩과 싱가포르), 그리고 자본주의 우월성을 보이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지원이 핵심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근호 역시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를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 ‘쇼윈도전략’이 한국 경제성장의 원인이라고 언급한다. 한국의 베트남 파병을 기회로 긴밀한 관계가 된 미국은 공업화 경제개발 모델로 한국을 선택한다. 모델이 된 한국의 성공을 위해 미국 주도의 ‘바이 코리아 정책’은 한국을 수출지향형 공업화 국가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두 번째 질문. 산업화는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었다? 천만의 말씀이다. 한강의 기적은 수없이 짓밟힌 인권의 핏자국 위에 세워진 것이다. 김호기는 박정희식 모델은 경제적으로 고도성장 시기였지만, 동시에 정경유착이 관행이 되고 인권탄압이 가해진 권위주의 시대였다고 썼다. 1930년대 자본주의가 대공황을 겪는 와중에 전체주의적 계획경제를 바탕으로 소련을 세계 강국으로 만든 스탈린은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짓뭉개고, 경제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한국의 박정희, 대만의 장개석, 싱가포르의 리콴유를 칭송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미국을 등에 업고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 체제는 정권의 정당화, 안정화, 장기화에 안간힘을 다한다. 1972년 선포한 유신헌법은 반민주주의 행태의 절정이었다. 유신헌법은 국민주권을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그들이 만든 어용 기관으로 넘겼으며, 국회의 권한을 축소해 삼권분립을 훼손함으로써 입헌주의와 법치주의 원리도 위반하였다. 대통령의 탄핵을 불가능에 가깝게 수정함으로써 민주공화국 국가형태에도 반함을 보여주었다.
박정희는 계엄령, 위수령, 국가비상사태, 휴교령 등 반민주적, 반헌법적 행위를 수없이 자행하였다. 박정희 통치 아래 유신의 광기는 정적인 김대중 납치 살해를 지시하고,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서울대 최종길 교수를 중앙정보부 직원이 퇴근길에 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반유신 투쟁이 들불처럼 번지자, 박정희는 1974년 1월 긴급조치를 발효하여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5년11개월 동안 민주주의의 암흑기를 지속한다. 장준하와 백기완, 김경락 목사 등 수많은 민주인사를 구속하고, 용공 카드로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함으로써 국민을 겁박하였다. 이어 민청학련 조정 혐의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날조해 무고한 사람을 처형하는 등 만행을 자행했다. 1979년 8월. 회사 운영 정상화와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가발업체 YH무역 노동자들이 공권력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18세 여성 노동자 김경숙이 의문의 죽임을 당한 사건은 박정희 정권 몰락의 서곡이었다. 윤 대통령이 말한 대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튼튼한 기반을 놓기는커녕, 반민주주의의 대표적 행보를 보여준 인물이 박정희였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만난 92개국 정상들이 “박정희 대통령이 이룬 압축 성장을 모두 부러워하며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에 경의를 표했다”라고 전하면서 박정희를 공부하면 당신 나라의 압축 성장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고 한다. 난 그들에게 언젠가는 터질 수 있는 압축 성장보다는 차라리 더디 가더라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성장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민주주의 주체인 국민 다수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진정한 성장이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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