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음모론 부추기는 중국 정부

이종섭 기자 2023. 10. 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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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대화를 나누는 한 중국인 친구는 가끔 중국 정치 상황에 대해 묻곤 한다. 친강 전 외교부장이 갑자기 낙마했을 때도 그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유와 배경을 아는지 물은 적이 있다. 당시 이런저런 ‘썰’을 풀자 그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중국 정치의 비밀주의와 불투명성에 대한 볼멘소리였다. 중국 내부 정치 상황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라오바이싱(老百姓·서민)’들은 비밀스러운 정치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갖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알려고 해봐야 알 수도 없고,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관심을 가져봐야 별로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자국 정치 상황에 대해 외국인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난 27일 리커창 전 중국 총리의 비보가 전해졌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1~2기 왕성히 활동하다 퇴임한 지 7개월밖에 안 된 총리가 갑자기 사망하자 외부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로 이 사안을 바라본다. 일종의 음모론적 시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 전 총리 사망에 다른 배경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미 퇴임한 그의 영향력이 제한적이고 시 주석 집권 3기 들어 그가 이끌던 공산당 내 계파도 사실상 정치적 기반을 잃은 상황에서 누군가 그를 해할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는 기층의 신망이 남아 있는 그가 의문사할 경우 불러올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당국은 리 전 총리 사망 직후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공개했고, 홍콩 매체는 소식통 말을 인용해 그가 수영을 하다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졌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가시지 않는 건 중국 정치의 비밀주의로 인한 신뢰 부족 탓이다. 단적으로 시 주석 집권 3기가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 두 명의 장관급 인사가 돌연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뒤 해임됐지만 중국 정부나 공산당은 이유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대중의 관심 사안에 투명하지 못하고 뭔가 감추려 할수록 음모론은 커지게 마련이다. 외부 분석가들은 리 전 총리 사후 제기되는 음모론과 의문의 시각이 현 지도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한다.

음모론을 부추기는 건 중국 당국이다. 국가 지도자급 원로가 사망했음에도 중국 관영매체들은 리 전 총리 사후 그에 대한 보도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리 전 총리의 고향 등 전국 각지에서는 추모 열기가 일고 있지만 당국은 억누르기에 바쁘다. 그의 사망 직후 실시간 검색어 순위 1~2위에 올랐던 관련 해시태그는 포털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사라졌다. 일부 대학에는 추모 자제령까지 내려졌다고 한다.

당국의 과민한 대응은 역사적 경험 때문일 수 있다. 중국에서는 1989년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실각한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이 된 적이 있다. 그러나 리 전 총리의 정치적 위상이나 정치·사회적인 상황, 당국의 통제력 등이 그때와 같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소요 사태나 시위로 번질 가능성은 많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결국 비밀주의에 휩싸인 중국 지도부가 갖는 두려움의 원천은 스스로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걸까.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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