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미래형 도서관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를 상징하는 건물은 높이 50m에 달하는 거대한 돔으로 덮여 있다. 1994년 난데없이 자동차 한 대가 그 돔 위에 올라앉은 이후, 해커스(hackers)를 자칭하는 학생들의 기발한 장난이 이어졌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모형이 출현하더니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로 변신하기도 했다. 기물 파괴 등의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대학 본부는 이들을 공식 홈페이지에 올려 두었다. 학생들의 발칙한 상상력을 오히려 권장하는 모양새다.
기발한 장난의 무대가 된 그 거대한 돔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을까? 첨단 기술의 장비나 혁신적인 발명품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싶은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높직한 천장에서 자연 채광이 환하게 들고 중간 기둥 없이 널찍하게 트인 공간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람실이었다. 둥근 벽면 안쪽에는 층층이 서가와 세미나실이 이어져 있고, 아담하게 분리된 서가의 구석마다 파묻힐 수 있는 책상이 놓여 있다. 그렇다. 돔의 내부는 전통적인 도서관이었다. 이 사실이 나에게는 돔보다도 더 거대한 상징으로 다가왔다.
국내 모 대학은 도서관 장서 45만권의 폐기를 추진하다가 구설에 올랐다. 2012년에 장서 100만권을 돌파했다며 기념행사와 희귀도서 전시전을 했던 바로 그 대학이다. 1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학교 당국에서는 미래형 도서관 구축의 일환이며,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진행 중이고 대출 실적을 기준으로 폐기 대상 도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뒤늦게 보존 희망 도서를 파악해서 조정 중이라고는 하지만 최소 30만권 이상의 폐기는 그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종이책의 효용에 대한 논란은 오래되었고, 공간 부족으로 도서 기증 받기를 거부하거나 기존 도서를 폐기하는 일 역시 특정 대학의 문제가 아니다. 개별 대학이 비용과 공간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국가 예산으로 공동보존서고를 추진하는 방향도 검토할 만하다. 다만 ‘미래형’ 도서관의 근거와 기준으로 삼은 수요와 효용성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긴 미래를 지향하는 것일까? 세상을 바꾸는 해커스의 본산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색창연한 도서관을 보며, 창의성은 어디서 오는지 다시 생각한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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