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요청대로 인터넷 게시물 삭제하는 방심위의 위험성

박재령 기자 2023. 10. 3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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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방통심의위] 국정원 요청 수용해 북한 연대사 의결 번복
"표현물 자체만 놓고 심의해야… 불법 심의 가능성 높다"
2016년 '노스코리아테크' 국보법 위반 차단했다가 '망신' 당하기도
"정부기관도 하나의 이해주체… 친정부적 '정치심의' 우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편집자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윤석열 정부 '가짜뉴스' 대응의 '전위대' 역할을 하며 안팎에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심의의 문제, 나아가 기구의 정당성 문제까지 대두되는 상황이다. 민간독립기구이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권한 아래 놓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와 기구 전반의 문제를 파헤치고 새로운 심의 모델을 제안한다.

여권 다수로 위원 구성이 바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국가보안법 위반 항목으로 상정된 인터넷 게시물 심의 결정을 번복해 '시정 요구'를 결정한 가운데 자의적 판단을 반복하면 심의에 위법 요소가 포함될 수 있고 친정부적 여론을 위한 심의가 남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방통심의위는 국정원 요청에 따라 북한 관련 해외 웹사이트를 차단했다가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소송에서 패한 전적이 있다.

▲Gettyimages.

지난 30일 열린 방통심의위 통신심의소위원회(통신소위)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북한 노동자단체 조선직업총동맹의 연대사에 접속차단 등 '시정 요구'(접속차단 및 삭제) 의결을 내렸다. 해당 안건은 지난 2월20일 통신소위에서 3대2로 '해당 없음' 의결이 난 안건이지만 방통심의위원 구성이 여권 다수로 바뀌자 국정원이 재심의를 요청했고 방통심의위가 받아들였다.

국정원은 재심의가 필요한 이유로 2가지를 댔다. 해당 게시물이 대중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심리전문가 의견서 2개와 검찰의 민주노총 수사다.

국정원은 “검찰 수사를 통해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가 북한에 포섭돼 합법적인 노조 활동을 빙자하여 북한 지령에 따른 민주노총 조정 및 장악 시도 민주노총 내부 통신망 아이디 및 비밀번호를 북에 제공하여 내부 동향 파악,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지도부 선거 동향 수집 개입 등 배후 조정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됨에 따라 연대사 게시글 역시 이적 표현물로서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이트 차단 화면

북한 연대사가 '해당 없음'으로 결정된 이유는 연대사의 '내용' 때문이었다.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 때 국가 존립에 해가 될 정도가 아니라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방통심의위가 가지고 있는 최소규제의 원칙 등도 거론됐다. 방통심의위 내 통신자문특별위원회에서도 5대4로 '해당 없음'이 다수였고, 방통심의위 법무팀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국정원의 주장은 쟁점이 됐던 연대사 '내용'을 뒤집지는 못했다. 심리전문가 의견서와 민주노총에 대한 검찰 수사 등 표현 내용 이외의 부수적인 것들을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여권 다수로 구성이 바뀐 방통심의위는 내용이 그대로인 연대사를 '해당 없음'에서 '시정 요구'로 의결을 번복했다. 판단 기준에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성옥 위원은 30일 회의에서 “검찰은 (민주노총의)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가 있는지 없는지를 수사 중인 거고 우리는 지금 이 표현물이 이적 표현물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고 있다. 별개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정원이 낸 것이) 제대로 된 보완자료라고 할 수 없다. 이 표현물 자체가 불법성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데 심리전문가들 의견서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방통심의위는 표현물의 내용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할 만큼 반국가단체를 찬양하는지만 객관적으로 심의해야 한다. 민주노총을 제재하는 기관이 아닌데 그런 전후 사정으로 심의 결과가 바뀐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민간 독립기구에 해당하는 방통심의위가 국가기관 요청대로 심의하는 점도 문제다. 인터넷 게시물 심의는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자칫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실상 행정기관이 인터넷 게시물을 통제하는 것으로 검열의 위험이 높다”며 “통신심의 및 시정요구 권한을 '민간자율단체로 이양하라'는 권고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여권 추천 김우석 위원은 지난달 25일 “방통심의위가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담당 국가기관이 판단을 해서 (심의를) 올리면 일단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라며 “올라온 모든 부분들에 그대로 시정조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북한 선전 유튜브 영상 갈무리

국정원 요청과 별개로 방통심의위가 별도 판단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난 6월12일 406건의 국가보안법 위반 심의 요청 게시물 가운데 18건에 '해당 없음' 의견을 냈던 윤성옥 위원은 회의에서 “전반적으로 살펴보니 북한 인물 다큐도 있고, 북한 공연물, 노래 이런 것들이 포함돼 있다”며 “지금 우리 위원회가 적용하는 기준은 북한 관련 영상은 다 금지하는 건지,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에선 북한가요나 노래 금지를 결정했는데 만약 같은 내용을 방송에서, 통일 관련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면 규제형평이 맞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정립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6월5일 회의에 올라온 북한 거주 주민들이 등장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식당을 방문하는 등 일상을 담은 북한 선전용 유튜브 영상 3건도 심의에 앞서 자문기구인 통신자문특별위원회가 '해당없음' 6인, '시정요구' 3인 의견으로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 의견이 많았지만 실제 통신소위에선 5명의 위원 가운데 윤성옥, 정민영 위원만 '해당 없음' 의견을 냈다. 해당 영상은 이미 언론에 보도되는 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내용의 심각성이 덜하거나, 조회수가 미미하거나, 올라온 후 시기가 오래 지난 영상이나 글에 대해서도 무분별한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

▲ 노스코리아테크 사이트 갈무리.

국가기관의 심의 요청을 비판 없이 수용하다 보면 심의 결과에 위법 요소가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방통심의위는 2016년 북한의 ICT 이슈 전문 웹사이트 노스코리아테크(northkoreatech.org)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접속차단을 결정했다가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프리덤하우스는 2017년 한국을 인터넷 부분자유국으로 분류하며 노스코리아테크 사례를 언급했다.

노스코리아테크는 외신 기자가 북한의 정보통신 기술 관련 이슈를 전문적으로 전 세계에 전달하기 위해 2010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학술, 보도 목적의 웹사이트로 지금도 유력 외신이 북한 이슈를 다룰 때 인용한다. 운영자 마크 윌리엄스 기자는 2017년 한국을 찾아 “국정원과 방통심의위가 기사를 제대로 읽었다면 사이트를 차단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났다. 노스코리아테크에 실린 글들은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는 기사지, 북한을 찬양하는 기사가 아니다. 이건 기사를 조금만 들여다봤더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했다.

▲ 2017년 '노스코리아테크'를 운영하는 마크 윌리엄스 기자(왼쪽)와 소송 대리를 맡은 손지원 변호사(오른쪽)가 서울 서초구 오픈넷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정민경 기자

해당 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로 볼 수 없는 정보들도 상당히 존재하는 본 웹사이트 전체를 차단한 것은 '최소규제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판시했고 2심 재판부는 “국적을 불문하고 표현의 자유는 보장된다”고 판시했다.

마크 윌리엄스 기자의 소송 대리를 맡았던 손지원 변호사는 통화에서 “색깔론에 휘둘릴 우려가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할 수 없는데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차단한 거라서 북한 연대사 의결 번복이 소송으로 가면 노스코리아테크처럼 불법 심의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로 법적 절차를 밟을 확률이 적으니까 무리하게 진행하는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방통심의위는 여야 6대3 구조로 정치적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가기관 요청에 그대로 따르는 것이 '정치심의'로 이어질 위험까지 있는 것이다. 잇따른 위원 해촉으로 방통심의위는 현재 여권 다수로 구성돼 있고 인터넷 게시물을 심의하는 통신소위는 여권 위원 2인이 다수결로 심의를 의결하고 있다.

손 변호사는 “'색깔론'을 강조하면서 북한 관련 표현물에 대해서 엄정하게 심의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도 읽힌다”며 “국가기관과 독립적으로 만든 기구(방통심의위)인데 인터넷 표현물을 다 정치적으로 해석해버리면 친정부적인 여론을 위해 심의를 남용할 가능성도 높아지는 거라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성옥 위원도 지난달 25일 통신소위에서 “국정원, 경찰청 등 정보기관은 내용 규제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 같은 경우 정부기관으로 정부 역시도 하나의 이해주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에선 정연주 전 위원장 체제에서 국가보안법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 <[단독] 국정원의 北 사이트 차단 요청, 방심위가 번번이 심의 거부> 기사를 통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북한 체제 및 김일성 일가를 찬양하는 인터넷 사이트와 게시물 심의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도저히 정상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김일성 찬양 웹사이트 차단 거부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며 정연주 당시 위원장 사퇴를 촉구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 시정요구 현황. 2012~2017년은 국민의힘 집권기 방통심의위, 2018년부턴 민주당 집권기 방통심의위다. 자료=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디어오늘 연도별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 시정요구 추이를 분석한 결과 △2013년 699건 △2014년 1137건 △2015년 1836건 △2016년 2570건 △2017년 1662건 △2018년 1939건 △2019년 1955건 △2020년 2119건 △2021년 1795건 △2022년 2071건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8년부터 연 1700건 이상 시정요구를 했다. 박근혜 정부 평균치와 비교해도 줄었다고 보기 힘들다. 이와 관련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통상 국정원에서 요청한 내역은 거의 다 시정요구 결정을 해왔다”고 밝혔다. 어느 정부의 방통심의위인지를 떠나 국정원 요청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문제가 반복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우려에도 방통심의위의 자의적 판단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언론을 인터넷 게시물만 심의하던 방통심의위 통신소위는 사상 처음 인터넷언론사(뉴스타파)를 심의 중이다. 코로나19, 북한 대남도발 등 현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음모론을 대상으로 하던 '사회질서 혼란' 조항을 언론사에 확대 적용했다. 뉴스타파는 “권력의 불법적 검열에 굴종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며 심의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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