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20㎞ 제한, 오후 3~7시도 통행 불허…日은 더 깐깐하다
- 스쿨존 500m로 한국보다 넓고
- 통행금지 3회 어기면 면허 정지
- 차고지 증명제로 불법주차도 無
- 학교선 지정된 통학로 보행 교육
- 아이들 “등하굣길 위험 못 느껴”
- 2021년 초등생 2명 사망 사고
- 합동조사로 7만여 곳 문제 조사
- 1년6개월 만에 80% 대책 마련
- 혼다사 급브레이크 데이터 공개
- 주민들 ‘스쿨 가드’ 자원봉사도
“통학로에서는 위험하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안전하지 않으면 우리가 즐겁게 지낼 수 없죠.” 일본 도쿄 니시신주쿠초등학교에 다니는 누카가 사쿠라(6) 양은 이같이 말했다.
지난 4월 일어난 부산 영도구 청동초 참사는 더는 통학로에서 아이가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갖게 했다. 지역 초등학교 통학로 개선이 절실한 상황에서 국제신문 취재진은 부산보다 먼저 시행착오를 겪고 적극적으로 개선에 나선 도쿄를 지난 13일 방문했다. 일본의 통학로 안전 정책은 한국보다 더 적극적이다. 정부의 정책 추진 의지가 강하고 시민의 성숙한 교통안전 의식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관계기관(교육기관-도로관리자-경찰) 간의 유기적인 협력이 잘 이뤄진다.
▮한국보다 넓은 500m 스쿨존
지난 13일 오후 3시 신주쿠구 니시신주쿠초. 저학년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교했다. 이들의 가방에는 ‘교통안전’이라고 적힌 노란색 덮개가 덮혀 있다. 교문 앞으로 나 있는 차도에는 차량이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 곳곳에 휴일을 제외한 오전 7시30분부터 9시,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차량은 다닐 수 없다. 이를 어기면 범칙금 7000엔(약 6만 원)에, 벌점 2점을 받는다. 누적벌점 6점이면 30일간 면허가 정지된다. 차고지 출입, 보행 곤란, 택배 배송 등의 사유가 있으면 경찰의 도로통행허가증을 받아야 차량을 운행할 수 있다.
한국 역시 시간제 차량 진입금지가 지정된 교문 앞 도로가 있지만 오후 3시 이후로는 통행제한이 풀린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마친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학교 아이들에게 교통지도를 하는 신주쿠구 교육위원회 안전관리원 이쿠라 후미오(74) 씨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보행로로 다녀야 한다고 엄격하게 교육한다”며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있어도 학교에서 정해준 통학로만 다니게 해 어떤 아이는 돌아서 등하교한다”고 설명했다. 우시야마 니시신주쿠초 부교장은 “학교가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안전지도의 날’에는 어린이가 하교할 때 교직원들이 같이 걸어가면서 안전한지 살펴본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8시 신주쿠구 카시와기초등학교. 주변 도로에 시속 2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한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스쿨존 안에서 일률적으로 시속 30km까지만 제한을 하는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스쿨존은 한국(학교 반경 300m 이내)과 달리 500m까지 설정해 넓었다. 이를 알리는 표지판이 동네 곳곳에 붙어 있다. 카시와기초 학생 대부분은 차도에 차량이 다니지 않아도 보행로에만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지정한 통학로만 다니도록 교육받은 결과다.
이처럼 대책을 세워도 운전자의 교통안전 의식이 없다면 소용없다. 취재진이 도쿄 곳곳 통학로를 찾았을 때 차량 대부분이 저속으로 운전했다. 우시야마 부교장은 “학교 주변에서 과속으로 달리는 차를 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김재열(도쿄대 환경학 박사) 한국교통연구원 일본 통신원은 “한국은 스쿨존에서만 집중적으로 주의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도로 곳곳에 학교 근처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어 운전자가 계속 주의하게끔 한다”고 말했다. 김 통신원은 또 일본에서 불법주차가 드물어 통학로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택에 차고나 근처에 주차장이 있어야 차량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 주차를 잘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는 대도시에서 차량 구입 시 거주지로부터 직선거리 2㎞ 안에 주차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10만 엔(약 9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고 차량 운행에 어려움이 많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일본의 아동(0~14세) 보행 중 교통사고 사상자는 1만3013명(일본 경찰청 자료)이며 연평균 4338명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한국에서 같은 기간 보행 중 교통사고로 죽거나 다친 어린이(0~12세)는 7542명, 연평균 2514명이다.
단순히 비교하면 일본의 사상자가 더 많지만 인구를 따져보면 지난해 기준 아동 10만 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상자는 한국이 570명(13·14세 제외)이고, 일본은 284명이다.
▮민관 유기적 협력
일본은 2021년 치바현 야치마타시에서 술을 마신 대형트럭 운전자가 하교하던 초등학생 5명을 덮쳐 두 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사고 현장은 보·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농로였고 통학로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같은 해 7월 긴급합동점검에 나섰고 조사 결과, 전국 통학로 7만6404곳에 대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이 가운데 개선한 지점은 지난해 말까지 6만1637곳에 달했다. 1년6개월만에 기간 80.7%를 해결했다.
도쿄도는 4497개 지점 중 4071곳(90.5%)에 대책을 마련했다. 도쿄도 교육청 관계자는 “통학로 표지판이나 자원봉사자 배치 등은 모두 마친 상태다. 정기적으로 관계 기관끼리 모여 통학로 대책을 논의한다”며 “통학로 개선 방안 가운데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파악해 우선순위를 두고 안전한 통학로를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타케무라 사토 카시와기 초등학교 교장은 “1년에 한 번씩 신주쿠구·경찰·학교, 학교의 PTA(학부모교사연합회·학생을 위한 교원-학부모 자원봉사 단체)가 모여 안전펜스 신호등과 같은 시설물 설치 등 통학 안전 개선을 위해 기관끼리 교섭한다”며 “기관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타협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점검 후 통학로 개선에 PDCA(Plan Do Check Act의 앞 글자로 계획 실행 점검 개선을 뜻함) 사이클을 적용했다. 이는 ▷문제되는 지점 파악하고 계획 세움 ▷대책 실행 ▷효과 확인 ▷대책 개선 혹은 충실히 진행함을 뜻한다. 이 순서대로 계속 반복해 통학로 안전도를 높인다.
일본은 민간과의 협력도 잘 된다. 자동차 제조사인 혼다는 자사 차량의 급브레이크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급브레이크 작동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지역을 데이터화하면 어디가 위험한지 알 수 있다. 학교와 지자체는 이를 활용해 위험한 통학로를 파악한다. 또 학교만 나서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지역주민과 연계해 등하굣길을 개선한다. 주민은 통학로 위험지역을 감시하는 등 스쿨가드라는 이름으로 자원봉사를 한다. 이들은 등하굣길에서의 개선할 점을 기관에 알리고 평가한다. 학교 통학 안전지도 역시 기관과 협력해 제작한다.
도쿄=
영상=홍정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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