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리본을 답니다

구둘래 기자 2023. 10. 31. 19:3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10월29일은 이태원 참사 1주기입니다.

책임지는 사람 한 명 없이 지나고 2023년, 한 신문은 이태원 참사를 겪고서도 시민들이 여전히 기초질서를 안 지킨다며 기획기사를 싣습니다.

이번호부터 제호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보라색 리본을 답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만리재에서]

김진수 선임기자

1년이 지났습니다. 10월29일은 이태원 참사 1주기입니다.

“이건 축제가 아닙니다. 축제면 행사의 내용이나 주최 측이 있는데 내용도 없고 그냥 핼러윈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되겠죠.”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2022년 11월1일 책임을 묻는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아무말 대잔치입니다. 주최 쪽 요구가 있어야만 공권력이 동원된다는 ‘행정력’의 정의 자체를 부정하는 이 말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반박됐습니다. 축제가 국가 주도로 혹은 주최 쪽이 있어야 한다는 발상은, 축제란 말이 기원한 ‘카니발’을 생각해봐도 어불성설이지요. 부르는 곳에만 가겠다, 혹은 가고 싶은 곳에만 가겠다는 것이 한 구를 책임진 공직자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옵니다.

이 아무말 대잔치에는 ‘스탠스’가 있습니다. 장관도 경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우왕좌왕하다 익힌 것을, 2022년에는 빠르게 학습합니다. 가장 빠르게 학습한 우등생의 말은 이랬습니다.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참사 다음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입니다. 아직 행정안전부 장관인 그분입니다.

지난 1년, “축제가 아니라 현상” 이런 비슷한 말을 무수히 확인하면서 보냈습니다. 신다은 기자가 쓴 이태원 재판 기사(제1485호 이태원 ‘경비원’ 아니라는 경찰… 윗선은 “스탠스 좋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2022년 10월31일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은 ‘경찰은 경비원이 아니다’라는 ‘신박한 논리’를 만듭니다. 나중에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란 말도 씁니다. 이러한 논리(경비원 아님)를 행정안전부 장관실에 전달한 경찰청 경비국 관계자는 (논리 개발을 치사하며) “불똥은 면하겠습니다ㅎㅎㅎ”라고 전합니다. 박 전 부장은 그에게 “5조 해석상 일반적 추상적 위험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스탠스 좋네”라고 답합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 ‘위험 발생의 방지’에 관한 구절일 텐데,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봐도 이 말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지기 위해 있는 조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도로에 놓인 트랙터를 방치해 발생한 교통사고에 대해서도 경찰의 잘못이라고 했습니다.(대법원 1998. 8.25. 선고, 98다16890판결)(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위험방지 조치에 관한 연구, 치안정책연구소, 2006-1, 책임연구보고서)

책임지는 사람 한 명 없이 지나고 2023년, 한 신문은 이태원 참사를 겪고서도 시민들이 여전히 기초질서를 안 지킨다며 기획기사를 싣습니다.(<조선일보> 10월25일, 바뀐 게 없는 핼러윈 1년… 우측통행하면 참사 막는다) 지하철과 클럽 거리를 점검하며 ‘우측통행하지 않는다’고 질타합니다. 신문이 사진으로 찍어 보여준 질서 정연한 곳은 일본 도쿄의 신주쿠역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희생자를 향한 모욕은 계속됩니다. 최근 나온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창비 펴냄)에서 유해정씨 말대로, 유가족은 ‘왜 돌아오지 못했는가’라는 말보다 ‘왜 그곳에 갔느냐’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이태원 기사 댓글은 ‘누칼협’(누가 칼로 위협했냐)으로 가득하기에 댓글창을 닫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0월26일 ‘이태원 1주기 시민추모대회’가 정치 행사라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우리는 애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호부터 제호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보라색 리본을 답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