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미중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전망
(서울=뉴스1) =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계속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도 이어지고 있다. 양국 간 경쟁과 갈등의 양상은 초기에는 정치적인 맥락에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고, 공급망의 단절은 양국의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므로 이러한 대립이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시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위적인 공급망의 단절이 결국 정치 논리로 인해 경제를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그러나 양국 간 경쟁과 대립의 고착, 이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과 구조적인 변화는 이미 거스르기 어려운 추세로 보인다.
최근 2~3년간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국제기구는 미중 패권경쟁의 여파로 인한 전 세계 공급망의 단절이 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2023년에 발간된 한 보고서에서는 특정 산업 분야의 단절, 전략적인 단절, 전반적인 단절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이에 따른 전 세계의 경제적인 손실을 분석했다. 예상 가능한 바와 같이 공급망 단절이 광범위하게 일어날수록 손실 역시 증가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예측값 자체의 불확실성이다. 모형을 사용해 예측하므로 모형의 설정에 따라 경제적인 손실의 예측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급망의 단절 양상도, 이에 따른 경제적인 손실 규모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은 정치적인 맥락에서 시작된 측면이 크지만, 공급망의 단절은 결국 기업의 결정이 큰 영향을 미친다. 국가가 근거 없이 기업의 결정을 강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겉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국가 수준의 전략과는 달리 공급망 및 해외투자와 관련한 기업의 전략은 외부자가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예측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대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이미 중국에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구축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이 기업 매출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국가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상충된다는 점이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7월 미국반도체산업협회가 미국 정부의 추가적인 대(對)중 반도체 수출규제 추진에 공개적으로 반대 성명을 발표한 것이 이러한 이해 상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까지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부분적인 단절이 유력하게 전망되는 가운데,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에서 지난 8월 발간한 보고서는 산업계에서 향후 공급망이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다. 반도체 및 관련 산업 관계자 28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로, 미국과 중국에서 활동하는 인사가 각각 100명씩 포함되어 있는데, 반도체 및 첨단기술 공급망의 변화 양상과 이에 대한 기업의 대처를 잘 보여준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공급망 변화 및 기업의 대체와 관련하여 75%가 넘는 응답자가 5~10년 후에 공급망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두 개의 공급망으로 분리될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기업들은 이에 대응하여 각각의 공급망 모두에서 경쟁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다만, 이러한 형태의 공급망이 안정될 때까지 약 3분의 2의 응답자가 5~10년이 소요되거나 아예 공급망이 안정되지 않을 것으로 응답했다. 따라서 이를 통해 반도체 산업 관계자들이 중장기적으로 공급망의 유의미한 변화와 불안정성의 지속을 예측한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으며, 주요 기업의 중장기 전략에 이러한 전망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범위를 넓혀본다면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5월에 발간한 보고서가 좋은 참고가 된다. 보고서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모든 전문가가 글로벌 공급망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였고, 이 가운데 3분의 2의 전문가가 제한적인 변화를 예측했다. 공급망 변화가 두드러지는 산업으로는 반도체, 재생에너지, 자동차, 의약품, 식량, 에너지, 기술 분야 등이 꼽혔는데, 이는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부분적인 디커플링 전망과 부합하는 결과다.
위 보고서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산업정책의 역할과 의의다. 경제성장, 혁신, 일자리 창출, 녹색전환 등 다양한 명목으로 많은 국가가 산업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경제포럼의 보고서에 따르면 91%의 전문가가 이러한 산업정책이 지경학적 갈등의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였다. 또한, 70%의 전문가는 산업정책이 오히려 경쟁을 축소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혁신을 촉진할 것으로 예측한 전문가는 39%, 산업정책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경제활동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전문가는 20%, 산업정책이 회복탄력성을 향상시킬 것으로 예측한 전문가는 13%에 불과했다.
다만, 주요 미래산업과 관련하여 이미 주요국이 산업정책을 통한 보조금 경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각국의 선택지가 넓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자국 정부로부터 거대한 규모의 보조금 혜택을 받는 타국 기업과의 경쟁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사회가 협력하여 과도한 보조금 경쟁을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실질적인 힘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국제질서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다. 산업정책의 추진, 주요국의 공급망 현지화 전략에 대응한 해외 진출 추진과 국제협력 강화, 국내 제조기반 공동화 방지 및 공급망 안정화 등 다양하고도 중대한 과제를 가지고 있다. 중장기적인 예측과 전략 수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이유이다.
/박성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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