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주사 맞고 추락해 하반신 마비...병원 잘못이냐, 환자 잘못이냐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r2ver@mk.co.kr) 2023. 10. 3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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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독감 치료 주사를 맞고 아파트에서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된 고등학생에게 부작용에 대해 고지하지 않은 병원이 배상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는 환자와 가족에게 위로를 전한다면서도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유감을 표했다.

31일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2부(주채광 부장판사)는 A씨가 경기도 중소도시의 B병원과 소속 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병원이 A씨에게 5억7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16살이던 2018년 12월 22일 저녁 전신 근육통과 고열 증상으로 B병원 응급실을 찾아 독감 치료 주사제인 페라미플루를 접종받았다. A씨는 약 한 시간 뒤 경구약을 처방받고 귀가했지만, 의료진으로부터 경구약과 페라미플루 주사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A씨는 퇴원 다음 날 오후 2시께 거주하던 아파트 7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허리·등뼈 등 골절을 입었고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으나 현재까지 하반신 마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고 당시 A씨의 부모는 외출해 집을 비운 상태였다.

A씨와 부모는 사고의 원인이 정신이상과 이상행동을 일으키는 페라미플루의 부작용이라고 주장했다. 또 병원이 투약 시 이런 사실을 고지하지 않아 몰랐다며 소를 제기했다. 병원은 이를 받아들여 병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병원의 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페라미플루 부작용으로 정신·신경 증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런 부작용은 특히 소아·청소년들에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병원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부작용 발생 가능성과 투약 후 이틀간은 환자가 혼자 있도록 해서는 안 되고, 행동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는 주의사항과 요양 요법에 대한 지도·설명의무를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A씨는 사고에 대해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떨어지는 꿈을 꾸고 나니 병원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작성된 구급활동일지에도 A씨는 추락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무의식 상태였다.

이에 의협은 이 같은 판결이 계속된다면 료진의 소신 있는 진료를 위축시키고 필수의료가 붕괴되는 상황에 도달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협은 “해당 환자의 신경 이상 증세가 독감 증상인지, 치료 주사제의 부작용인지 불명확하다”며 “기존 법리에 비춰봤을 때도 의사가 설명해야 하는 범위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사가 최선을 다해 진료해도 치명적인 결과를 피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 의료행위의 본질적 한계”라며 “그런데도 고의가 아닌 오진이나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 등에 엄격한 형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의료행위의 본질과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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