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안보여요” 그래도 종일 터벅터벅…승마체험, 사람들만 신났다 [지구, 뭐래?]

2023. 10. 3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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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동물복지연구소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제대로 앞이 안 보일 말도 승마체험에 이용되고 있었다. 치료를 떠나 최소한 회복할 시간이라도 줘야 하는데….”

승마체험이 유행이다. 제주도는 물론, 최근엔 경기도 등 수도권에서도 승마체험장이 크게 늘고 있다.

신기하고 즐겁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다. 체험장 저 너머. 우리가 보지 않는 그곳. 이 말들은 어떤 환경 속에서 먹고 자고 살아가고 있을까.

실제 현장을 조사한 보고서가 나왔다. 결과는 예상대로, 예상보다 심각했다. 소음에 민감한 말이지만, 포격 소리가 요란한 군사시설 옆에 있는가 하면, 공항 근처에 있는 체험장도 있었다. 심지어 굉음의 ATV와 말 체험을 버젓이 같이 운영하기도 했다.

시력이 심각하게 손실된 말이나 피가 코에 내비치고 피부질환을 앓은 말들도 체험에 내몰리고 있었다.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업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람들의 환호와 웃음이 가득한 그곳의 또 다른 이면이다.

[출처 한국동물복지연구소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

이들 말은 대부분 퇴역한 경주마다.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경주에 내몰리다 빨리 늙는다. 사람으로 치면 중고등학생 때 이미 은퇴 당하는 셈. 그리고 남은 삶을 이곳에서 갇혀 보낸다.

승마체험 자체도 논란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최소한의 환경 보장이다. 말 산업 육성에만 초점을 맞출 뿐 정작 사육 환경 등엔 무관심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물자유연대 부속 한국동물복지연구소는 최근 경기도 및 제주도 승마체험시설의 현장을 조사한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실 말은 사육환경이나 특성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말은 생활할 때 바닥재가 중요한 동물이다.

가장 좋은 건 두꺼운 깔짚. 영화 등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장면이다. 현실적으론 고무 매트 위에 깔짚을 두껍게 까는 걸 권장한다.

말은 청력에 매우 민감하다. 생존에도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소음을 최소화하는 게 필수다.

또, 말은 선천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라 무리 지어 사는 게 본능이다. 자연 상태에선 최대 600마리까지 함께 생활할 정도다.

[출처 한국동물복지연구소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

조사 결과, 일선 현장은 이 같은 말의 특성과 거리가 멀었다. 경기도 승마장의 경우 깔짚을 충분히 제공한 곳은 2곳밖에 없었다. 제주도 승마장도 1곳에 그쳤다. 연구소 측은 “말의 배변과 오물을 사람 무릎 이상까지 쌓아둔 곳도 있었다”고 밝혔다.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을 물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 물에 녹조가 잔뜩 껴 있는가 하면, 아예 물통이 없는 곳도 다수 확인됐다.

[출처 한국동물복지연구소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

소음 문제는 더 심각했다. 경기도 한 승마장은 군사시설 주변에 위치, 포격하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제주도에선 공항 주변에 있어 마장 주변에 이착륙 소리가 계속 발생했고, 또 다른 곳은 ATV와 함께 체험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말의 청력범위는 55~3만3500헤르츠(Hz)로, 사람보다 주파수가 높다. 그만큼 소음에 더 민감하다는 의미다.

[출처 한국동물복지연구소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말의 건강상태도 심각했다. 경기도 승마장의 경우, 조사 대상 업체 28개소 중 15개소(53.6%)에서 육안상으로도 병변이 있는 말이 확인됐다. 상처나 부분탈모, 피부질환 등이다.

제주도는 더 심했다. 전체 조사 대상 업체 중 말이 모두 건강한 업체는 단 10%(2개소)에 그쳤다. 나머지 모든 업체의 말들에선 외상이나 피부질환 등이 확인됐다.

[출처 한국동물복지연구소 승마체험산업 실태조사]

단순히 몸만 아픈 게 아니다. 이상행동을 반복하는 정형 행동도 다수 관찰됐다. 말의 정형 행동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따른 이상행동으로, ‘여물통 씹기(Crib-biting)’, ‘몸 흔들기(Weaving)’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도, 제주도 모두 정형 행동이 발견됐는데, 의미 없이 계속 여물통을 씹는 경우가 다수 보였다. 변을 먹는 ‘식분증’도 확인됐다.

한 업체에선 과도한 스트레스로 말들이 여물통을 계속 씹자, 이를 못하게 물통 주변에 철조망을 쳐놓기도 했다. 스트레스 요인을 없애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말에 상해를 줄 수 있는 장치를 더한 셈이다.

다만, 한가지 의미 있는 결과도 나왔다. 제주도의 경우 경기도보다 평균 말 마릿수가 더 많음에도 이상행동이 관찰된 업체 비율은 오히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 측은 “상대적으로 넓은 초지에서 풀을 뜯거나 뛰어다닐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사육환경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보고서는 퇴역한 경주마와 승마체험시설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현행법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말산업육성법 등은 있지만 정작 말의 관리나 복지와 관련된 제도는 없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현재 말과 관련한 법률은 말산업육성법, 체육시설법, 한국마사회법, 동물보호법 등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법은 말의 산업 육성과 번식 등을 다루고 있으며,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등에서도 소나 돼지, 닭 등에는 개별 기준이 있지만 말의 경우는 별도 기준이 없다.

연구소 측은 “말 관리 및 복지와 관련된 법안과 제도를 마련하고, 승마장 관리 종사자의 의무교육 시스템 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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