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지출 구조조정으로 약자보호, 미래성장동력 확보”…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유설희 기자 2023. 10. 3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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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안 제시 없이 ‘3대개혁’ 국회 협조 요청
R&D 예산 삭감 기조 유지 입장
민주당 “자화자찬, 맹탕 연설” 비판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 노동, 교육 등 3개 개혁에 대한 국회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3대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정부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집권 1년6개월 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첫 대화 자리가 마련됐지만 협치의 물꼬를 틀만 한 소통은 이뤄지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 기조는 건전재정이라며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원칙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연설을 통해 “저출산이라는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려면 미래세대에게 희망을 주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경제 사회 전반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을 위해 의원님들의 깊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정부는 미래세대를 위해 연금 개혁을 위한 준비를 착실하게 진행했다”며 “국회가 초당적 논의를 통해 연금개혁 방안을 법률로 확정할 때까지 적극 참여하고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구체적 개혁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연금개혁을 국회로 떠넘긴 것이다.

윤 대통령은 예산안 기조에 대해 “건전재정은 대내적으로는 물가 안정에, 대외적으로는 국가신인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면서 “정부의 재정 운용 기조는 건전재정으로서 미래세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에 따라 “2024년 총지출은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2.8% 증가하도록 편성했다”며 “내년도 예산안 편성과정에서 총 23조원 규모의 지출을 구조조정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건전재정은 단순하게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 없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쓰자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마련된 재원은 국방, 법치, 교육, 보건 등 국가 본질 기능 강화와 약자 보호, 그리고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더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치안, 국방, 행정서비스 등 국가의 본질 기능과 관련해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더 철저히 보장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충실히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병 봉급은 내년도에 35만 원을 인상해 2025년까지 ‘병 봉급 205만원’ 달성에 차질이 없도록 추진하겠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사상 초유의 축소 논란을 빚은 연구개발(R&D) 예산을 두고는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질적 개선과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예산안에는 첨단 인공지능(AI) 디지털, 바이오, 양자, 우주, 차세대 원자력 등에 대한 R&D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며 “R&D 예산은 향후 계속 지원 분야를 발굴하여 지원 규모를 늘릴 것이지만, 일단 이번에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3조4000억원은 약 300만명의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데 배정했다”고 했다. 향후 확대 가능성은 열어놨지만 내년도 R&D 예산은 현행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건전재정을 기조로 단순한 지출 줄이기를 넘어 국민의 혈세를 낭비 없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낭비 요인을 차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윤 대통령은) 복지정책의 최우선을 약자 보호에 두고 국가의 손길이 빠짐없이 닿을 수 있도록 더욱 두텁게 지원할 것을 약속했으며 치안·국방·행정서비스 등 국가의 본질 기능과 관련해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더 철저히 보장하기 위한 예산안도 충실히 마련됐다”고 밝혔다.

반면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을 열고 “윤 대통령의 연설은 경제 위기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억지 성과를 자화자찬하며 자기합리화에 급급했다”며 “한 마디로 맹탕연설”이라고 말했다. 윤 원내대변인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대한 구차한 변명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대통령을 지켜보며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며 “감세 정책으로 세수 펑크를 초래한 것으로 부족해 민생을 내팽개치고 국가 미래마저 펑크를 내려고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민생 실패, 국정 운영 실패에 대한 반성과 쇄신 없이 실패를 반복하겠다는 아집투성이 연설”이라며 “반성 없는 자화자찬 연설 속에 국정 운영 쇄신과 갱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 전에 5부 요인 및 여야 지도부와의 사전환담 자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났다. 이 대표는 비공개 환담에서 “현장의 민생과 경제가 너무 어렵다는 말씀을 드렸다”며 “정부 각 부처가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생각으로 현장에 좀 더 천착하고 정책이나 예산에 있어서 대대적인 전환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 후에는 여야 원내대표·국회 상임위원장들과 간담회를 한 후 오찬을 함께 했다. 야당 상임위원장들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관련 김건희 여사 특혜 의혹, 대통령의 계속된 법안 거부권 행사, 10·29 이태원 참사 책임 등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고 윤 대통령은 “최대한 국정에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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