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병자호란후 환향녀와 외교 문제에서 읽어야 할 점[서병기 연예톡톡]

2023. 10. 3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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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채 이마에 난 저 상처를 보라! 스스로 이마에 흉을 만들어 청의 남자를 피했다. 그런 길채에게 오랑캐에 더렵혀진 환향녀라고?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MBC 금토드라마 ‘연인’은 15~16회에도 병자호란후 청나라에 끌려갔던 포로의 속환(贖還) 문제가 다뤄졌다.

장현(남궁민)이 형님으로 받드는 의주 건달 출신 양천(최무성)은 포로들에게 “속환이 됐어도 조선에 가는 길이 험한 건 다들 알고 있지. 강 건너다 죽기도 하고, 속환문서를 뺏겨 도로 데려오기도 하고, 산적 도적 만나 죽기도 하고...”라고 말한다.

28일 방송된 16회에는 환향녀(還鄕女) 이야기도 나왔다. 여주인공 유길채(안은진)가 환향녀다.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 가 갖은 고생과 고통을 겪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일 뿐인데, 조선에서는 또 다른 시련과 수모, 냉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 여자들 망신은 다 시키고...” “뻔뻔스럽게. 낯도 참 두껍다.” “오랑캐에 더럽혀진 년이...”

동네 사람들이 환향녀 길채를 두고 수군거린다.

길채는 고향으로 돌아와 남편 구원무(지승현)를 만났지만, 그 남편은 그 사이에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삼고, 임신까지 시켰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구원무는 길채의 얼굴을 보고 당황하면서 묻는 첫 질문이 “그 곳에서 부인은 아무 일도 없었겠죠”다. 아내가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를 묻고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심양에서 오랑캐에게 몹쓸 짓을 당하지 않았는지부터 물었다. 종사관인 구원무에게는 유길채가 정절을 지켰는지가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길채가 구원무에게 이혼을 선언하는 장면을 보면 ‘연인’ 작가의 환향녀에 대한 시선이 잘 드러난다.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건 제 잘못은 아닙니다. 그 일로 이혼을 요구했다면 전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심양에서 이장현 나리께 마음을 준 일은 미안합니다. 해서 이혼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명문(明文)이다. 사리가 명백하고 뜻이 분명한 이 문장을 작가가 얼마나 힘들여 썼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당당하게 이혼을 선언하고 당차게 돌아섬으로써, 길채 캐릭터를 주체적으로 살려낸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환향녀는 당시 큰 사회문제였다. 인조 왕 앞으로 환향녀에 대한 상소가 이어졌다.

며느리가 정조를 잃어 우리 족보를 계속 이어갈 수가 없으니 이혼을 허락해달라는 상소가 있는가 하면, 자기 딸이 환향녀라는 이유로 이혼당하게 생겼다며 혼인 생활을 지속하게 해달라는 친청아버지의 딱한 상소도 있었다. 서로 다른 입장에 서있는 두 상소 모두 각자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이게 슬픈 현실이었다.

오죽하면 한양 도성에 들어오기 전에 있는 국영여관인 홍제원(弘濟院)의 연못에 목욕을 하면 과거를 씻을 수 있다고 했겠는가. ‘연인’에서는 전쟁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길채 아버지 유교연(오만석)이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딸 길채가 남은 평생 치욕속에 살지 않게 해주겠다며 길채의 목을 조르기까지 했다.

‘연인’은 병자호란과 그 이후 주변과 조선 역사를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장현(남궁민)과 길채(안은진)의 가슴 시리고, 절절한 멜로를 그려내고 있다.

홍타이지(칸, 김준원)는 명청전투인 송산전투에서 승리했지만 큰 부상을 입었다. 부하도 많이 잃었다. 만리장성 동쪽 끝에 있는 관문인 산해관을 아직 차지하지도 못했다. 자신의 딸인 각화(이청아)에게 “그래서 민심을 잃어서는 안돼. 포로를 학대하는 일로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죽는다.

인조는 홍타이지가 죽고난 후에는 더욱 불안해한다. 투덜거리는 단계를 지나 징징거리는 수준이다. 왜냐하면 더욱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끌려간 최명길에게 별 기별이 없는가? 자기가 다 책임을 진다고 하더니...”

“도르곤이 조선에 어찌할 거로 보이는가. 병자년에는 날 죽이고 오랑캐로 왕을 앉히자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이제 그런 자들이 권력을 잡았는데 어찌 하는가”

인조는 ‘책임정치’를 하지 않고 ‘불안정치’를 한다. 그 틈새를 파고 인조에게 ‘입안의 혀’처럼 구는 자가 김자점이다. 김자점은 그 공으로 영의정이 된다.

인조반정 공신으로 공조판서와 좌의정에 오른 심기원이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을 보면 인조의 이런 불안 노이로제가 잘 드러난다.

“우리 전하께선 참으로 무서운 분이시죠. 그리도 최명길을 의지하고 싸고 도시더니, 이제 최명길이 모든 책임을 지고 죽기를 바라다니. 우리 신하들은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난 불똥이 튀기 전에 조정을 떠날 것이오.”

인조는 중화를 존중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화이론(華夷論)에 입각해 주전론을 받아들였으나, 주전론은 목소리만 컸지, 어떻게 전쟁에 대비해야 할지 준비가 부족했다. 활과 검, 총포가 얼마나 있는지 체크는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청나라가 왜 두번이나 조선을 침략했는지를 파악했는지도 의문이다.(청은 명을 치기 위해 조선을 침략했다.)

왕은 그때 그때 불안을 보이면서 이제 최명길 때려잡기에 나섰다. 신하들은 줄을 잘 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인조는 주전론을 주창한 청음 김상헌이 볼모로 청나라 심양에 잡혀갔다가 소현세자와 함께 돌아올 때도 나이 많은 신하를 만나기를 부담스러워 했다. 김상헌은 결국 인조를 알현하지 못하고, 양주의 석실에서 노후를 보냈다. (이때 감상헌보다 37살 젊은 성리학자이자 효종의 스승인 우암 송시열이 회덕(대전)에서 양주 석실로 찾아와 김상헌에게 스승이 되어달라고 한다.)

홍타이지에 이어 권력을 잡은 ‘섭정끝판왕’ 도르곤은 무서운 왕이었다. 어린 조카 순치제를 왕좌에 앉혀놓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사실상의 황제였다.

도르곤은 아버지인 누르하치가 죽자 자신의 어머니를 순장시킨 이복 형 홍타이지(청태종)에게 복수하는 의미인지는 몰라도 홍타이지의 여인을 자신이 취하기도 했다.

인조 왕으로선 더욱 힘든 외교다. 더 불안하기도 하다. 그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답은 없지만 소현세자(김무준)가 정답일 수 있다. 조선인으로는 소현세자가 청나라와 도르곤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도르곤은 명나라의 북경 자금성을 접수할 때도 소현세자를 데리고 다녔다.

섭정왕 도르곤이 실권을 잡자 소현세자와 강빈(전혜원)은 고향을 다녀올 수 있었다. 강빈은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에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도르곤이 섭정왕이 되면서 세자의 고향 방문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인조는 소현-강빈을 활용한 정보외교를 펼쳐야 할텐데, 오히려 그 반대로 나갔다. 인조는 소현세자를 극도로 경계했다. 강빈에게는 인조의 수라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를 씌웠고, 궁안 소용 조씨 저주 사건에 연루돼 사사(賜死)되었다. 강빈의 어린 아들들도 제주 유배로 죽게 만들었고, 친정 가족들도 멸문의 화를 당했다. 다분히 죄를 만들어 죽인 것 같은 느낌이다.

‘연인’을 보면 더욱 안타깝다. 장현(남궁민)은 소현세자의 멘토다. 도르곤에게 권력이 넘어오자, 장현은 용골대(최영우)를 만나 “소현이 왕이 되면 조선에서 나는 물건의 이권은 오직 용골대와 도르곤하고만 나눈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장현은 도르곤이 권력을 잡자, 그동안 포로 속환으로 돈을 톡톡히 벌어온 용골대가 자신도 숙청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심리를 이용해 용골대에게 접근하는 외교력을 발휘한다. 이러하다면 인조가 소현세자와 콜라보를 해 시너지를 낼 생각을 하지 않고, 견제한 것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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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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