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발언 없이 '민생' 초점···"범정부 물가안정체계 가동할 것"
경제 23번 최다 언급···"국내외 상황 24시간 모니터링"
세부 예산·복지정책 깨알소개 "혈세 적재적소에 쓸것"
국회 오늘부터 예산안 심의···법정시한까지 줄다리기 예고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국회에서 진행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는 단연 ‘경제’와 ‘민생’이 화두였다. 고금리와 고물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를 둘러싼 여건이 녹록하지 않은 만큼 초당적 협치를 호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윤 대통령은 A4 용지 21장에 달하는 27분 17초의 연설에서 ‘경제’라는 단어를 23번으로 가장 많이 언급했다. 이어 정부(23회), 국민(22회), 지원(16회), 민생(8회), 협력(8회), 협조(5회)도 여러 차례 거론했다. 윤 대통령은 건전재정을 강조하고 연구개발(R&D) 예산 지출 구조 조정을 통해 확보한 3조 4000억 원으로 약 300만 명의 사회적 약자와 취약 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민생과 물가 안정을 위해 범정부 물가 안정 체계를 가동, 두터운 민생 안정 대책을 펴겠다고도 설명했다. 지난해와 달리 전 정부에 대한 비판처럼 야당이 꺼릴 만한 정파적 메시지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더해 이스라엘·하마스의 무력 충돌로 인한 글로벌 안보 리스크까지 겹쳐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며 “세계 교역은 유례를 찾기 힘든 0%대 증가율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경제 상황과 관련해서는 ‘경제 안보’라는 단어를 쓰며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경제가 비상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물가와 민생을 정책 최우선에 두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장바구니 물가 관리에 주력하는 한편 취약 계층의 주거·교통·통신 등 필수 생계비 부담을 경감하고 체감할 수 있는 민생 안정 대책을 촘촘히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또 “서민 금융 공급 확대를 통해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담 완화 노력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재정 운용 기조는 건전재정을 천명했다. 윤 대통령은 “내년 총지출은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2.8% 증가하도록 편성했다”며 “건전재정은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혈세를 낭비 없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래 세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23조 원의 지출을 구조 조정을 통해 국방·법치·교육·보건 등 국가 본질 기능의 강화와 약자 보호,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더 투입하겠다”며 “경제가 어려울수록 어려움을 더 크게 겪는 서민과 취약 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차원에서 세부 예산 항목 및 정책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국회의 처리를 설득했다. 그중에는 △4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 21만 3000원 인상 △자립 준비 청년수당 월 10만 원씩 25% 인상 △모든 기초 차상위 가구 청년 대학등록금 전액 지원 △한 부모 가족의 소득 기준 완화로 3만 2000명에 추가 양육비 지원 △총 12만 명의 소상공인에 대한 저리 융자 제공 등이 포함됐다.
윤 대통령은 야당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170만 명의 기초 수급자 생계급여 인상 및 100만 명 대학생과 청년의 국가장학금 인상분 등이 집행될 수 있도록 각별한 배려를 당부드린다”며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재정법·산업은행법 등 민생 경제 활성화 법안에도 의원님들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3대 개혁(연금·노동·교육)에 대해서도 항목별로 구체적인 상황을 언급하면서 야당의 협력을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저출산이라는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려면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고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경제 사회 전반의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며 “3대 개혁을 위해 의원님들의 깊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회가 초당적 논의를 통해 연금 개혁 방안을 법률로 확정할 때까지 적극 참여하고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국회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11월 1일 공청회를 시작으로 예산안 심의에 본격 돌입한다. 11월 3·6일 경제 부처, 7·8일 비경제 부처 예산 심사와 9·10일 종합 정책 질의 이후 14~17일 감액 심사를, 20~24일 증액 심사를 진행한다. 각 상임위원회에서도 소관 부처 예산안 심사가 예정돼 있다. 다만 여야 간 예산안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헌법에 따라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즉 올해는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여야 간 이견이 지속될 경우 법정 시한은 물론 12월 9일 정기국회 내에도 예산안 통과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번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국가 경제를 내팽개친 예산’이라며 특별히 더 세밀하게 심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야당의 공세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강도원 기자 theone@sedaily.com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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