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6시간 인스타만 하는 투자자…"기업 `끓는 점` 찾는 거죠"[오늘의 DT인]
거대한 패러다임이 바뀌는 '빅 체인지' 시류 따르는 투자 즐겨
"장사 못하는 기업 결국 도태"
"안녕하세요 상무님. 디지털타임스입니다."
이광욱 쿼드자산운용 상무(44·사진)는 자타공인 '인스타그램 중독자'다. 그와의 인터뷰도 인스타그램 DM(Direct Message)을 통해 이뤄졌다. 하루에만 6시간씩 이 이미지 기반 SNS에 접속해 있는 이 상무의 본업은 잠재력 있는 벤처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것이다.
하루에 3만개 이상의 도넛이 팔리는 '노티드', 69만 구독자를 가진 스타일리스트 김지혜의 '인스턴트펑크', 세계에서 가장 힙한 캠핑 브랜드로 불리는 '헬리녹스', MZ세대의 감성 숙소 플랫폼 '스테이폴리오', 프랑스 라파예트백화점에 입점한 국내 비건 화장품 '디어달리아', 일명 '특허 괴물' 글로벌 특허수익화 기업 '아이디어허브' 등이 그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올라있다. 인상깊게 본 유튜브 강연 영상 속의 그를 기어코 끄집어내서는 만났다. 꿈과 세속 사이, 치열한 계산과 달뜬 몽상 사이에 그의 투자 인생이 펼쳐지고 있었다.
옛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의 애널리스트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짧은 여의도 생활을 뒤로 하고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떠나 미시건주 변호사가 됐다. 한국 자동차 회사가 많이 진출한 디트로이트, 앨라배마, 조지아 등에선 한국인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로펌들이 있어 어렵지 않게 취업이 됐다. 2년 동안 미국에서 근무를 하고 다시 우리투자증권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기업금융(IB)본부의 인수합병(M&A) 담당부서였다.
"초등학교 때 '호텔리어'란 드라마를 보고 거기에 나오는 M&A 전문가나 기업 투자자에 대한 꿈을 키웠어요,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 나타나기 시작한 전문직업이었죠." 당시 구조조정이 급했던 우리 앞에 나타난 그들은 그리 반가운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당시 유행하던 말로 '쿨한' 그 모습이 갓 스물이 넘은 대학생을 홀리기엔 충분했다.
한국투자공사(KIC)의 사내변호사를 거쳐 지금은 쿼드자산운용 벤처2본부에서 다양한 분야의 비상장기업 투자를 담당하고 있다. 쿼드자산운용에서 일한지는 8년째, 회사의 파트너가 된지는 3년차다. 처음엔 베트남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대형 자산운용사 드래곤캐피탈 관련 업무를 맡았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쓴 베트남 관련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현재 그가 이끄는 본부는 소비재에 특화된 투자 전략으로 유명하다. 패션과 먹거리는 경기에 민감하고 유행도 탄다. 한국이 강점이 있는 분야도 아니고. "외신에선 우리를 알파벳 'K'자를 독차지한 나라라고 부릅니다. 이젠 세계 시장 어디에서도 'K'만 붙으면 한국과 관련된 것이란 걸 알 정도죠.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K-콘텐츠는 가요, 영화, 웹툰, 드라마를 시작으로 전세계적인 호응을 이끌었습니다. 저는 이 호감이 결국 소비재로 내려갈 것이라고 믿는 겁니다."
그는 세상의 거대한 패러다임이 바뀌는, 이른바 '빅 체인지'의 시류를 따르는 투자를 즐긴다. K-콘텐츠, 생산자동화 로봇, 특허와 지적재산권 투자 등이 그의 마음을 끌어당겼던 것은 그래서였다. "세상이 바뀌고 있어요. 이젠 TV 광고보다 효과적인 게 플래그십 또는 팝업스토어잖아요. 아더에러나 젠틀몬스터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보면 미술관 같죠. 여기를 방문한 인플루언서들과 그의 일촌(팔로워)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무한한 콘텐츠가 수천명의 또래 집단에 또 뿌려지는 겁니다." 그는 이를 두고 탄알이 명중한다는 의미의 '탄착(彈着)'이라고 했다.
그는 귀가 밝은 사람이다. 발은 더 빨랐다. 꽂히는 회사가 있으면 만나러 갔다. 국내 중견기업인 DAC(동아알루미늄) 2세 기업으로, 이미 양호한 실적을 내고 있어 벤처 투자자들에게 냉담했던 헬리녹스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는 팔자에 없는 거짓말도 했다. "아웃도어 매거진 인터뷰를 하자고 뻥을 치고(웃음) 약속을 잡았어요. 디어달리아는 어느 날 화장을 하던 아내가 흘리듯이 '좋네' 하는 말을 듣고는 당장 만나자고 찾아 갔고요. "
다시 인스타 중독이 된 얘기를 해보자. "이제 그 회사의 대표를 만나지 않아도 대강의 사업 진행 상황과 실적이 보일 정도에요. 하지만 절대로 '촉'만으로 투자하진 않아요. 잘하는 브랜드를 발견하고 열심히 지켜보다 보면 '물이 끓는 지점'이 있어요. 인스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누군가가 듣고, 입고, 먹고 하는 게 유의미하게 보이는 때가 오죠. 그 때까지는 기다립니다. 투자는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거든요." 너무 일찍 들어가면 위험하고 너무 늦으면 정말 늦어버린다. 먼저 대중의 검증을 받아야 투자 단계로 나갈 수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 과거 대기업에 취업하지 않으면 별다른 판로가 없었던 패션 디자이너들이 무신사와 W컨셉 등으로 제 브랜드를 만들어 내놓고 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지 않고 광고도 찾기 어려운 서울 시내 F&B 매장엔 대기자만 수백명이다. 세상이 바뀌었기에 기회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크리에이터들의 역량이 뛰어납니다. 유별난 교육열로 키워져 고학력자가 많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아직은 오래 가는 브랜드가 없다지만 조만간 한국에서도 100년 가는 브랜드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팬덤과 하입(hype·과장광고, 과대선전)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팬덤이 있어야 오래 가는 브랜드가 됩니다. 시간을 두고 팬덤을 만들어야죠. 현재 K-열풍이 하입이라면 오랜 시간 반복되면서 팬덤이 됩니다."
그가 투자한 음식·라이프 스타일 업체 GFFG는 해외 진출을 앞뒀다. 11월 '호족반'이 뉴욕에 진출하고 내년 초 미국 오렌지카운티에 '노티드' 도넛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이 상무는 "'K-푸드'라 불리는 한식이 지금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지만 미국에 진출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 F&B 아이템을 꼽는다면 핫도그, 도넛, 커피 세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아이템 자체에서 미국인의 거부감이 없어야 하고, 거기서 부터는 믹스(MIX)에요. 도넛은 도넛인데 좀 다른 거죠. 우리는 원래 융합을 잘하는 민족이에요. 좀비와 사극을 섞는다든가(웃음)."
역사적인 고금리에 자금은 말랐고 투자업계에도 혹한기가 찾아왔다. 그는 "기업의 기본은 장사다. 장사 못하는 기업은 결국 도태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간절히 부글거리며 마침내 '끓는 점'에 도달하기를 열망하는 창업가들에게 삶은 고독하고 일은 혹독할 것이다. 그들에게 이광욱 상무가 엄한 투자자이면서도 자상한 변호사이자 유쾌한 친구가 돼 줄 것 같아 맥락없는 안도감이 든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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