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피해자 피눈물 외면하는 ‘전청조 밈 놀이’[스경연예연구소]
펜싱 전 국가대표 남현희(42)의 예비신랑으로 소개된 전청조씨(27)가 각종 사기와 범죄 의혹으로 전 국민을 패닉에 빠뜨린 가운데, 개그맨 엄지윤이 그를 패러디했다가 비난 여론에 휩싸였다.
엄지윤은 지난 30일 자신의 SNS에 “OK. Next Time. I AM 엄청조”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 엄지윤은 검은색 의상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덩치 큰 여러 남성에 둘러싸여 있다. 이는 P그룹 혼외자이자 재벌 3세 행각을 위해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닌 전씨의 모습을 따라 한 것이다.
그러나 게시물이 공개되자 누리꾼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일었다. 전씨에게 속아 많게는 억대의 재산 피해 를 입은 이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경솔한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엄지윤은 논란이 일자 당장 게시물을 삭제했다.
재벌 3세, IT 전문가, 남자 행세 등 전끼의 충격적인 사기 행각이 양파 껍질처럼 하나둘씩 벗겨지면서 온라인에서는 그에 대한 각종 패러디, 밈(Meme)이 무수히 양산됐다. 특히 그가 교포 행세를 위해 어설픈 영어를 섞어 보낸 문자메시지 “I am 신뢰에요”를 패러디해 일상 대화에 사용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누리꾼들이 이를 재미로 쓰는 것은 그렇다 쳐도 공공기관이나 기업, 언론, 연예인들이 이를 홍보용으로 무분별하게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몇몇 누리꾼들은 “비슷한 수법으로 사기 피해를 입은 이들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데, 꼭 이렇게 웃음 코드로 소비해야 하나” “피해자들은 피가 마른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이 이걸 보고 웃을 수 있겠느냐” 등의 의견을 냈다.
대중문화평론가 위근우는 30일 자신의 SNS에 “전청조가 했던 짓들이 상상 이하로 허접해서 나도 웃기긴 한데 명백히 사기 피해자들을 양산한 사기꾼이 사기를 위해 쓴 말이라면 적어도 기업 마케팅에서는 지양해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그냥 사기꾼에 대한 비웃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기에 속은 사람들에 대한 비웃음이 될 수 있다”며 2차 가해를 우려했다. 또 예능에서 무차별적으로 소비될 것에 대해서도 걱정의 목소리를 냈다.
전씨는 지난 23일 남현희의 재혼 상대자로 ‘여성조선’ 인터뷰를 통해 얼굴이 공개됐으나 성별, 출신, 집안 등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알고 보니 전씨는 사기 전과가 있는 인물이었다. 지난 2022년 사기죄로 2년 3개월 만기 출소한 전씨는 월세 3000만원에 달하는 고급 거주지 시그니엘에 살며 남현희에게 명품백과 수억원짜리 자동차 등을 선물하고 환심을 샀다. 이후 전씨는 거주지 주민, 남현희의 가족과 주변 인물을 상대로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인 정황이 드러났다.
유튜브 ‘연예 뒤통령이진호’에 따르면 전씨는 남현희 뿐 아니라 이전에도 같은 방법으로 여러 여성과 남성을 대상으로 상습 결혼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 제주에서 결혼식을 올린 여성도 있으며, 옥중 결혼을 통해 혼인신고를 한 남성도 있다는 것이다.
전씨의 실체가 밝혀지자 그에게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사기를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고발한 피해자들이 나왔다. 이뿐만 아니라 전씨는 남씨의 중학생 조카를 골프채로 때려 아동학대 혐의로도 경찰에 입건된 상태다. 서울동부지법 신현일 부장판사는 31일 전청조에 대해 체포 및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경기도 김포 일대에서 곧바로 그를 체포하고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남현희는 31일 대리인을 통해 전씨와 전씨 어머니를 사기 및 사기미수, 협박 등의 혐의로, 또 자신에 대해 (공범)의혹을 제기한 김민석 강서구의회 의원에 대해 무고,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장을 접수했다.
이 사건이 더욱 화제가 된 것은 상대가 펜싱 금메달리스트 남현희 였기 때문이다. 남현희는 지난 30일 라디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면서도 자신 역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전씨도 같은 날 채널A ‘뉴스’에 얼굴을 드러내 “내가 재벌 3세가 아니라는 걸 남현희가 지난 2월 이미 알고 있었고, 성전환 수술도 먼저 권했다”고 말하며 사실상 공범이라고 주장해 법적 싸움이 예상된다.
남현희를 공범으로 지목하고 고발한 피해자가 있는 만큼, 경찰은 남현희 역시 전씨의 사기 행각에 공모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들여다볼 방침이다.
강주일 기자 joo102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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