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휴전 없다"… 美 인도주의 강조하며 거리두기

김상준 기자(kim.sangjun@mk.co.kr) 2023. 10. 3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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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강경론 유지에
美, 전폭 지지서 신중론 전환
중동 패권구도도 고려한 듯
NYT "바이든 지지 애매해"
하마스, 女인질 영상 공개에
네타냐후 "잔혹한 심리선전"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전날 로켓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 도시 키르얏 셰모나 일대에 이스라엘군 탱크가 진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을 전개하면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인도주의적 재앙을 막기 위한 즉각 휴전을 요구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지지해오던 미국의 태도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이스라엘 지지를 유지하는 동시에 인도주의적 위기를 경고해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모양새다. 국제사회에서 커져가는 이스라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앞으로 중동 패권 경쟁에서 미국의 입지를 고려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30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에서 휴전은 없다"며 "휴전 요구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테러에, 야만에 항복하라는 요구와 같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민간인 피해를 이유로 전쟁 일시중단(Pauses)이나 휴전(Ceasefire)을 촉구하고 있는 국제사회를 향한 답변이다. 앞서 유엔은 지난 27일 총회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의 과거 행위를 소환했다. 그는 "미국이 진주만 폭격이나 9·11 테러 이후 휴전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스라엘도 지난 7일 끔찍한 공격을 당한 후 하마스와의 적대행위를 중단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적·비공식적 루트를 통해 이스라엘에 전쟁 일시중단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작심발언'으로 풀이된다.

예상보다 강경한 이스라엘 정부의 태도에 미국은 기존의 전폭적 지지를 다소 거둬들이는 듯한 양상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9일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에서 하마스를 향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지지하면서도 모든 조치는 민간인 보호를 우선하는 국제인도주의법에 맞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한 애매한 지지를 보내고, 참모들도 인도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30일(현지시간) 자체 방송 채널을 통해 공개한 이스라엘 인질 영상에서 3명의 여성 인질을 등장시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인질 석방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는 선전전을 펼쳤다. UPI연합뉴스

미국은 하마스 소탕을 위해 일부 민간인의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뉘앙스가 담긴 이스라엘의 메시지에 분명한 반대를 표명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28일 가자지구 병원을 하마스가 지휘본부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이 29일 CNN 인터뷰에서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삼으면서 이스라엘을 극도로 어렵게 하고 부담을 가중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국제인도법에 따라 테러리스트와 민간인을 구분해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이스라엘의 책임이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지상전 전개 책임에서 발을 빼는 모습도 관측된다. 설리번 보좌관은 CNN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현재 작전이 현명하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그들의 작전에 대한 성격 규정은 이스라엘에 맡기겠다"며 "그들이 결정 주체이자 작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그는 "미국은 전략·전술 측면에서 목표와 그 수단을 맞추는 데 대한 문제를 물밑에서 압박했고, 이스라엘에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고 덧붙였다. '어려운 질문'은 가자지구 지하터널을 무력화할 전략, 확전 가능성 방지 대책 등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전쟁 초기 미국은 이스라엘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하마스의 기습으로 이스라엘 피해가 유례없이 컸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이스라엘 편에 설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지상전에 앞서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대규모 폭격을 실시하면서 여론은 급격히 뒤바뀌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현재까지 이스라엘 공격으로 사망한 가자지구 주민을 8306명, 부상자는 2만242명으로 집계했다.

특히 미국은 전쟁 이후 중동에서의 패권 구도도 고려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시도 중이던 미국은 사우디가 반대했던 전면전에 대해 지속적인 지지를 보내기에는 부담이다. 여기에 러시아가 이미 이란에 밀착하면서 중동에 다시 입김을 행사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하마스는 이 같은 기류 변화를 이용하려는 모습이다. 하마스는 이날 이스라엘 여성 인질 3인의 영상을 공개하면서 선전선동에 활용하고 있다. 1분17초짜리 영상에서 인질들은 흰색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편한 복장으로 앉아 네타냐후 총리를 비판했다. 인질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무고한 시민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며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석방하고 그 대가로 자신들의 석방을 보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영상이 공개된 직후 성명을 내고 '잔혹한 심리선전'이라고 비판했다.

[김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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