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현실화'… 경제안보팀 꾸리는 로펌
기업, 지정학적 불안 시달려
세종, 해외규제 전문팀 신설
전문가 20여명 폭넓은 자문
광장·태평양·화우도 팀꾸려
# 건설회사 A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국가들이 진행한 대(對) 러시아 제재로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 주변 항로를 이용해 화물을 날라야 하는데 통항료를 내게 되면 제재에 저촉될 수 있기 때문이다. A기업은 예외를 인정받을 방법이 없는지 국내 한 대형 로펌에 자문을 구했다.
# 배터리 기업 B는 프랑스의 '녹색산업법'에 대비하기 위해 로펌을 찾았다. 프랑스와 멀리 떨어진 한국 기업은 운송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위험이 큰 만큼 대응 방안을 구상하기 위해서다.
미·중 갈등과 러시아 경제제재 등 '신냉전질서'가 굳어질 조짐을 보이면서 대형 로펌도 지정학적 불안에 전문적으로 대응하는 조직을 꾸리고 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 23일 '해외규제 컴플라이언스 전문팀(해외규제팀)'을 신설했다. 세종의 규제 그룹을 총괄하는 이용우 변호사와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에서 자문·소송 업무를 했던 박효민 변호사가 팀을 이끈다. 수출통제와 경제제재 등 세계 경제안보 분야에서 활동한 전문인력 20여 명을 투입해 폭넓은 자문을 제공하는 게 목표다. 박 변호사는 "철강, 화학, 자동차 부품, 반도체 등 수출 업종에서 주로 자문을 요청한다"고 전했다.
광장과 태평양은 지난 9월 가장 많은 30명 규모로 팀을 신설해 대응 중이다. '경제안보'에 초점을 맞춘 광장의 경제안보 태스크포스(TF)는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인 박태호 광장국제통상연구원장과 최석영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교섭대표, 임채민 전 국무총리실장 등 탄탄한 자문단을 갖췄다. 태평양 역시 지난 9월 법무부 국제분쟁대응과장을 지낸 한창완 변호사를 주축으로 '국제규제·분쟁대응연구소'를 설립했다. 임성남 전 외교부 차관 등이 자문단으로 참여한다.
화우는 지난 7월 경제안보센터(가칭)를 새로 꾸렸다. 외교부 통상법무과 출신인 이성범 센터장을 필두로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과 김동선 전 중소기업청장, 최종문 전 외교부 제2차관 등이 팀에 포함됐다. 율촌은 지난 9월 조세 분야 전문가인 김동수 변호사와 지식재산권(IP)·기술 부문의 손도일 변호사 등 20명 규모로 'IRA-칩스액트 대응센터'를 발족했다.
국제통상 이슈는 로펌의 오랜 활동 영역이다. 다만 최근 들어 경제안보 차원으로 관심도를 높이고 조직을 확대·신설한다는 것이 달라진 부분이다. 미국 등 주요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기업도 달라진 무역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견제 의도가 깔려 있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보조금을 받으려는 기업은 중국을 공급망에서 고립시키는 미국 측 전략에 동참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10년간 중국에 대한 투자가 제한되는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등을 두고 해석이 분분해 자문 수요가 많다고 한다.
각국 정부가 이익을 침해한 상대국에 직접적으로 보복을 가하는 사례가 늘면서 사전에 분쟁을 관리하는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법무법인 화우에서 경제안보센터장을 맡은 이성범 변호사는 "로펌의 역할은 법률 분석을 통해 정부 정책의 목적을 파악하고 기업 활동이 상대국에서 허가받을 수 있도록 설득하는 논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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