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벨과학상, 식은 열기 속 살아나는 불씨
한국에서 10월은 더 이상 '노벨상의 계절'이 아닌 듯하다. 올해 노벨상에 대한 언론 보도는 긍정적으로 보면 매우 점잖았고, 반대로 보면 현저히 관심이 줄었다. 이러한 반응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 언론도 국민도 우리나라의 노벨과학상 수상에 대해 체념 또는 포기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올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우리나라도 노벨과학상 수상이 머지않았다는 확신을 가졌다. 양자점을 연구한 과학자 세 사람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는데 해당 분야에서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으로 연구를 선도하는 과학자가 있다. 국내외 언론이나 학술정보 분석기관에서 유력한 노벨상 수상 후보로 손꼽았던 분이다. 당사자만큼은 아니겠으나 한동안 매우 속이 상했다.
한국의 과학연구는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다. 우리나라 연구개발(R&D) 역사는 75년 가까이 됐으나 그중 50여 년은 산업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과학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이나 2000년대 초반까지 국가의 총 R&D 투자 중 기초연구비는 20%를 넘지 않았다. 과학 선진국 대비 절반에 못 미치는 투자에도 한국 과학자들은 특유의 근성과 열정으로 빠르게 연구 경쟁력을 키워갔다. 그 결과 한 세대 만에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 과학자가 탄생했으며, '노벨상급 연구'를 하는 사람을 꼽자면 양손이 모자라다. 최근에는 스웨덴 왕립과학한림원에서 인류에 공헌도가 높은 연구 분야에서 '독창성(originality)'을 인정받은 소수의 연구자만 초청해 개최하는 노벨심포지엄에 참여한 국내 과학자도 늘고 있다. 노벨과학상 발표 후 아쉬움의 탄식이 깊다는 것은 환호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의미다.
다만 실제 수상을 위해서는 꼭 바꿔야 할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산업화 시대 과학연구 기반 확충과 양적 성장을 위해 만들어놓은 여러 평가 기준을 일부 완화하는 것이다. 연구비에 따라 충족해야 하는 논문 수가 있거나 영향력지수(IF)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내도록 하는 것이 과학자들을 열심히 연구하게 하는 좋은 숙제가 될 수도 있지만, 정말 새로운 지식은 아무도 몰랐던 문제를 찾아 수많은 실패와 도전 끝에 얻을 수 있다. 연구의 자유도가 높은, 숙제 없는 연구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리더급 연구자가 관련 분야 세계적 석학들과 관계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해외 전문학회 참여나 공동연구 지원과는 다른 이야기다. 이러한 부분은 이미 폭넓게 지원되고 있으나 분야별 최고 권위자를 중심으로 한 관계망은 아직 미미하다. 일례로 한림원은 지난해부터 '기초과학네트워킹센터'를 만들어 소규모 워크숍을 개최 중인데, 지난 5월 나노연구 주제에 참여했던 문지 바웬디 교수가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과학연구는 노벨상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연구를 업으로 삼은 과학자가 노벨상을 꿈꾸고, 이를 목표로 하는 것 역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외부의 열기가 식더라도 노벨상 수상으로 국가위상을 높여 그동안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한 국가와 국민에게 보답하고 싶은 과학자의 꿈은 그대로다. 이제 연구 일선에서 물러난 선배 과학자로서 후배들이 탁월한 성과를 내고 우리 과기계의 오랜 꿈을 이루길 응원한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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