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시공? “덮어”···마루시공 불법하도급이 만든 ‘땜빵 아파트’

조해람 기자 2023. 10. 3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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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시 한 아파트에서 발견된 배관 부실시공(왼쪽)과 실리콘으로 덮은 뒤 시공을 마무리한 모습(오른쪽) 권리찾기유니온 제공.

최근 경기 파주 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마루를 시공한 A씨는 업체의 지시로 불량 배관을 ‘땜빵’했다. 앞선 실내배관 공정에 불량이 발생해 배관이 벽 밖으로 노출됐는데, 업체는 “마루를 시공하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일단 시공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A씨는 튀어나온 배관을 실리콘으로 대충 덮었다.

대구의 아파트 마루를 시공한 B씨도 비슷한 지시를 받았다. 마루를 덮기 전 시멘트 바닥에 크랙(균열)이 길게 발생했는데도, 현장관리자(오야지)는 별도 보수제를 쓰지 않고 “그냥 마루본드로 덮으라”고 했다.

최우영 권리찾기유니온 마루지부장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권리찾기유니온이 연 ‘마루노동의 실체는 무엇인가: 현장관리자 증언 국회 간담회’에 발제자로 나서 “순살 아파트는 모두 알지만, 실내 내부 공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이런 사례들을 전했다.

최 지부장은 마루시공 업계의 복잡한 고용관계가 사용자 책임 회피, 불법 근로계약, 임금·퇴직공제금 체불 등을 부른다고 말했다. 마루시공은 건설사가 마루회사에 하도급을 주고, 마루회사가 다시 현장관리자에게 재하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장관리자가 다시 개별 마루시공노동자에게 일을 준다.

노동자들은 업체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는데도 고용관계는 각자 다르다. 때에 따라 급여를 마루회사에게 받기도 하고 현장관리자에게 받기도 한다. 마루회사와 근로계약을 맺고 급여를 받는데도 개인사업자처럼 3.3% 사업소득세를 내는 경우도 잦다. 사업소득세를 현장관리자가 한꺼번에 내기도 한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조차 그때그때 다르다. 최 지부장은 “필요에 따라 사업주가 유리한 대로 노동자성과 개인사업자성을 주장할 수 있다”며 “노동시간과 임금이 비어 있는 백지 근로계약서도 횡행한다”고 했다.

대구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균열(왼쪽)과 이를 마루본드로 임시 처리한 모습(오른쪽). 권리찾기유니온 제공

근로기준법 위반과 불법하도급 등은 고용 불안을 부르고, 고용이 불안하면 ‘땜빵’ 등 부당한 시공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 최 지부장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법이 없는데 그 부실을 우리가 고발하고 알리고 할 수 있겠느냐”라며 “문제가 있으면 현장을 멈춰야 하는데, 그냥 덮으라는 말에 안된다고 답했다가는 바로 잘린다”고 했다.

마루시공업체 현장관리자 박모씨도 이날 간담회에 나와 현장의 실태를 전했다. 박씨는 현장 노동자들이 건설사와 마루회사의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씨는 “작업 방향은 건설사와 마루회사가 계약할 때 이미 정해져 있고, (나는) 그 내용을 그대로 전달한다”며 “시공자가 시공한 내용과 매일 출근부도 현장 건설사와 마루회사에 보고한다”고 했다.

권리찾기유니온과 심상정·이은주 정의당 의원 등이 31일 오후 국회에서 ‘마루시공 노동의 실체는 무엇인가: 현장관리자 증언 국회간담회’를 열고 있다. 조해람 기자

현장관리자들도 ‘주먹구구식’ 고용관계에 처해 있었다. 박씨는 “구두로 근로계약을 맺었고, 서면으로 사업계약이나 공사계약을 하지 않는다”며 “현장관리자도 엄밀히 따지면 중간관리자이고 근로자인데, 법적 문제가 생기면 떠넘긴다”고 했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마루업계를 근로감독하고 국토교통부도 불법하도급을 조사하고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최충운 노동부 사무관은 “사실관계와 법률검토를 꼼꼼히 조사하고 있고, 백지 근로계약 수사도 각 지방관서별로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복잡한 건설 현장의 구조 때문에 감독이 조금 지연되고 있지만 최대한 신속히 감독을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최 지부장은 “정부는 역할을 하고, 건설사는 ‘팔 집’ 말고 ‘살 집’을 짓고, 하도급업체는 부실을 막는 데 최대한 노력하면서 건강한 아파트를 만들어야 한다”며 “(부실시공으로) 곰팡이와 벌레가 난무하는 아파트를 국민이 비싼 돈을 내고 사는 상황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정상적인 노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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