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간부 성희롱 '솜방망이'에 분노한 연합뉴스 기자 "당신들만의 회사 아니다"
연합, 연달아 편집총국 간부 괴롭힘 사건 대응 논란
대기발령 없이 인사이동·징계 권고 불수용
155명 "잘못을 잘못이라 못하는 문화…엄중징계"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연합뉴스 기자 155명이 편집총국 간부들의 괴롭힘·성희롱 사건에 대한 회사 대응을 비판하며 성명을 냈다. 최근 연합뉴스에선 보직 간부의 괴롭힘 사건이 잇달아 불거졌다. 그러나 회사가 외부 조사기관의 징계 권고에 응하지 않거나 가해자에 대한 공식 분리조치 없이 인사이동에 그치면서 “가해자 감싸기이자 2차가해 방조”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사원급 기자 155명은 30일 '잘못을 잘못이라 하지 못하는 언론사에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일련의 사내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사안을 대하는 회사 태도에 절망을 느낀다”라며 가해자 엄중 징계와 개선책 제시를 요구했다. 저연차 기자들이 중심이 돼 연명했고, 최고 15년차 기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성희롱 가해자에 대기발령 없이 인사이동
연합뉴스는 지난 27일 편집총국 부국장 A씨를 '콘텐츠 책무위원'에 발령했다. 연합뉴스는 이달 초 A씨의 기자들에 대한 괴롭힘 사건을 인지하고 조사에 들어갔던 상황이다. 취재에 따르면 A씨는 연합뉴스 사회부 팀 회식에서 신입기자들에게 성적으로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 이런 상황에 회사가 A씨에 대해 대기발령 없이 정상 출근을 전제로 인사이동을 하면서 부절적한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콘텐츠 책무위원은 연합뉴스 보도에 따른 피해 예방과 구제를 책임지는 직무다.
A씨가 인사 직후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사내 불신 풍조'를 문제 삼으면서 솜방망이 비판이 커졌다.
A씨는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보직 사퇴 뜻을 사장에게 전달했기에 이번 인사를 달게 받아들인다. 절제되지 못한 언행으로 후배들에게 불쾌감을 안겨 참으로 미안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후배들을 성적 대상으로 여겼거나 희롱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A씨는 이어 “연합뉴스 내 불신 풍조가 위험 수위에 달할 정도로 팽배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다”며 “정황 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사실과 다른 악의적 내용의 지라시가 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배들은 후배들의 잘못과 실수를 바로잡아줘야 함에도 눈치 보고 넘어가고, 후배들은 더 이상 선배들을 존경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외부 권고에도 징계 않기로…지난달 주요보직 부장으로
한편 연합뉴스는 올 초 불거진 편집총국 B 부장의 사건은 징계 없이 마무리했다. '성희롱 및 괴롭힘 대책 특별위원회'(성희롱대책특위) 노측 위원들이 이에 항의하며 전원 즉각 사퇴를 선언했다.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가 26일 낸 성명에 따르면, 노사 합의로 조사를 맡긴 노무법인이 최근 해당 사건 가해자에 '적정선 이상의 징계'를 제언했으나 회사는 수용하지 않았다. 성희롱대책특위에서 노측이 재심을 요구했으나 사측 위원들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성희롱대책특위의 조직문화 개선 조치 요구도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연합뉴스지부는 “노조 측 위원 4인은 아무런 가치 없는 특위에서 즉각 사퇴한다”고 밝혔다.
한편 B 부장의 경우 회사가 사건을 인지하고도 지난달 중순 편집총국 주요 취재부서 부장으로 발령했다는 점에서 '가해자 감싸기'이자 '인사 참사'라는 평가도 나온다. 연합뉴스지부는 26일 성명에서 “성기홍 경영진에 대한 마지막 기대가 사라졌다. 조직문화 개선을 주요 목표로 내세우던 성 사장의 인사가 참사로 반복되고 있다”며 “잇따르는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사건이 그 증거”라고 했다.
연합뉴스 기자 155명은 성명에서 “연합뉴스 기자라는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 이 회사는 경영진과 경영진이 감싸는 일부 간부, 선배들만의 회사가 아니다”라며 “경영진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납득 가능한 설명을 하라”고 밝혔다.
기자들은 부국장 A씨 사건을 두고 “회사는 대기발령도 아닌 '부서 이동'을 밀어붙였다. 이해할 수 없다. 피해자와 회사 구성원을 모두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A씨가) '변명문' 내지는 '훈계문'으로 읽히는 글까지 올렸다. 반성은 전혀 없고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2차 가해의 전형으로 회사가 이를 방조한 것”이라고 했다. B씨 사건에 대해선 “부적절한 발언으로 동료에게 상처를 줘도 이 회사에서는 징계 없이 주요 보직을 맡을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했다.
기자들은 “가해자를 감싸고 2차 가해를 방조하는 회사의 태도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라며 “잘못된 사내 문화로 주니어 퇴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 것이 채 반년도 되지 않았다. 무엇이 달라졌나. 왜 더 나빠졌나”라고 물었다.
[ 관련 기사 : 연합뉴스 줄퇴사 '무서운 MZ' 때문? "후진적 조직 문화 영향" ]
기자들은 “명백한 비위 행위마저 제대로 징계하지 못하는 회사의 모습에, 경영진이 바른길을 가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근본부터 의심하게 된다”며 “조직문화를 흐린 각종 사안의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징계와, 말 잔치에 그치지 않을 개선책 제시도 요구한다”고 밝혔다.
성 사장, “위중한 괴롭힘 중징계” 등 대책 제시
성기홍 연합뉴스 사장은 31일 임원회의에서 평기자 성명에 답변을 밝혔다. 성 사장은 이날 “모 간부(A씨) 사안은 아직 징계 절차와 조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며 “인사 조치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징계 이전에 우선 보직을 면하는 선조치를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3기관 노무법인에서 조만간 조사를 마무리해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성 사장은 B 부장 사건에 대해선 “(올 초 문제 제기 뒤) 노조 협의를 거쳐 당사자에 대해 상급자 '엄중경고' 조치로 마무리했다”고 한 뒤 “9월 초 동일한 사안에 다시 문제 제기가 이뤄져 절차와 규정에 따라 조사가 진행됐다”며 “재발 사안이 없는 것으로 조사돼 올 초에 동일한 조치로 주의를 환기했다”고 했다.
성 사장은 개선책으로 △위중한 성희롱과 괴롭힘은 중징계 △인사평가 도입 시 평가에 '괴롭힘'이나 '성인지 감수성' 항목 포함 △성희롱대책특위 전면 재구성 등을 밝혔다. 성 사장은 “위중한 성희롱과 괴롭힘은 중징계를 원칙으로 하고, 정직 이상의 징계 처분 시 집행 종료일로부터 2년간을 승호 및 승진 연한 산정 기간에서 제외하겠다. 가해자는 보직, 인사이동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위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 인사 포함도 노조와 논의하겠다”고 했다.
구성원들 “가해자 감싸기 인사·2차가해 인정해야”
그러나 성 사장 답변을 들은 구성원들은 회사가 잘못된 대응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이 불거질 때 가해자를 감싸는 대응이 '곪아 터진 지 오래'라는 것이다.
구성원 ㄱ씨는 “사건 축소하려다 일이 커지니 뒤늦게 입장을 밝혔지만, 효과가 없을 것이라 본다”며 “경영진의 미지근한 대책에 가해자는 이미 피해자를 비웃는 훈계조 글을 올렸다. 과거 성희롱 가해자에 회전문 인사까지 한 셈이다. 이게 2차 가해가 아니면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ㄱ씨는 “회사는 '2차 가해 우려'를 이유로 들면서 사건과 관련해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지만 되레 사건을 가리고 문제 제기를 막으려는 수단 같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연합뉴스 구성원 ㄴ씨는 “이제 말을 하기 싫을 정도다. 말해봐야 바뀌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면 '그 후배가 예민하고 나약한 MZ', '열심히 산 선배를 담근 놈' 이런 식으로 사내에 프레임이 짜여 손가락질한다”며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직 인사이동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는데, 성희롱 가해자를 주요 보직부장을 시켜주는 것이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연합뉴스지부는 평기자 성명에 관해 “징계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며 “비밀을 유지해야 해 각 사안에 대해 거론할 수 없다”고 한 뒤 “다만 충분히 생각하고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 측은 '2차 가해 우려로 인해 사장 입장문 외 개별 사건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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