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경기부양책 끝내겠단 이 나라…“장기금리 1% 넘어도 용인”

이승훈 특파원(thoth@mk.co.kr),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3. 10. 3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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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완화는 유지...정책적 조정 강화
올해 GDP 전망치 2.0%로 깜짝 상향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지난 7월에 이어 3개월 만에 금융정책을 수정했다.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의 변동폭을 보다 확대한 것이다. 일본은 경기부양을 위해 지난 10년간 양적완화를 이어왔는데 출구전략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본 경제성장률(GDP)과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는 내부 판단도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행은 이번에 GDP 전망치를 기존 1.3%에서 2.0%의 큰 폭으로, CPI도 2.5%에서 2.8%로 올렸다.

31일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장기금리 변동폭 상한을 1%로 유지하되, 시장 동향에 따라 이를 어느 정도 초과해도 용인하기로 했다.

이는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는 핵심인 ‘장단금리조작(수익률곡선제어·YCC)’을 한층 유연하게 가져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장기금리를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현재 일본은행은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0% 정도로 유도하는 대규모 금융완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은행은 시장금리가 변동 허용폭 이상으로 올라가면 ‘지정가격 오퍼레이션’이라 불리는 국채 매입을 통해 이를 억제해왔다.

하지만 펜데믹 이후 불거진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이 금리 인상에 들어가면서 일본은행도 마냥 제로금리를 고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10년물 국채 금리 상한선을 지난해 12월 0.25%에서 0.5%로 올린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0.5%를 목표로 잡고 사실상 1%까지 오르는 것을 용인했다. 이번에는 0.5% 목표도 없애고, 1%를 초과해도 용인하는 것으로 정책을 수정했다.

정책결정을 앞두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2013년 5월 이후 최고치인 0.955%까지 급등하는 등 사실상 1%에 육박한 상황이다. 시장금리가 이미 정책목표까지 도달한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이번 정책 수정으로 대량의 국채 매수를 피하는 동시에 양적완화 종료에 대한 시그널을 시장에 줬다는 분석이다.

일본은행 전경. [이승훈 도쿄 특파원]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장의 불확실성이 극히 높은 상황에서 장기금리를 1% 이하로 강하게 억제할 경우 부작용도 커질 수 있다”며 “이번 정책 수정으로 시장 기능의 회복으로 이어지면 좋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정책 변경에도 장기금리가 1%를 크게 웃돌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시각도 보였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의 정책 수정 배경으로 탄탄한 국내경제성장과 물가인상을 꼽고 있다. 일본은행은 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7월 1.3%에서 이번에 2.0%로 0.7%포인트나 올렸다. 기업활동이 확대되는 가운데 가계소비 증가, 방일 외국인 급증 등이 영향을 준 것이다. 특히 일본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수출의 경우 지난달 약 9조1900억엔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여기에 양적완화가 초래하는 물가인상은 일본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일본은행은 올해 CPI 전망치를 지난 7월 2.5%에서 이번에 2.8%로 상향 조정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내년도 CPI다. 이번에 기존의 1.9%에서 큰 폭 오른 2.8%를 전망치로 제시한 것이다. 이 경우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연간 2% 이상의 CPI 상승이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행이 경제성장과 물가상승의 두 가지 핵심 지표를 어느 정도 확인한 것으로 본다”며 “시장 정상화를 위해 한 발을 내디딘 것”이라고 이번 정책 수정을 평가했다.

늘어나는 미일금리격차와 이로 인한 엔저 장기화도 일본은행에 부담을 줬을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제로금리 정책을 펼치는 일본과 달리,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5.25~5.5% 끌어올린 상황이다. 미일금리격차는 엔화 매도, 달러 매수로 이어지면서 달러당 엔화는 최근 150엔대를 꾸준히 넘나드는 상황이다.

엔화 약세가 장기화되면서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 정부로는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인상으로 이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입물가도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에도 부담을 주는 상황이다. 우에다 총재는 “에너지를 포함한 전반적 수입물가 상승이 물가상승의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엔화값은 전날 밤 일본은행이 YCC 변동폭을 더 높일 것이라는 닛케이발 보도가 나온 뒤 밤새 강세를 띄었지만 실제로 결정 발표가 있은 뒤에는 다시 150엔대로 진입하며 빠른 약세를 보였다. 이는 시장에서 여전히 일본은행이 주요 중앙은행 중에서 예외적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이날 일본은행의 발표 이후 소니 파이낸셜 그룹의 모리모토 준타로 수석 외환 분석가는 불룸버그에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는데는 장애물이 높아 보인다” 며 “단기적으로 달러당 152엔대 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삭소 캐피털 마켓의 차루 차나나 시장 분석가 역시 “지난주에도 달러당 150엔대가 넘어선 안되는 선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됐는데, 이번 조치로 엔화값이 달러당 152엔 이라는 시험대에 오를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제 모든 시선이 이번주 하반기 미 연준에 쏠리는데, 그들이 비둘기파적 입장을 취하는 것만이 엔화값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 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은행 전경. [이승훈 도쿄 특파원]
일본은행이 석 달만에 금융정책 수정에 나서면서 언제 제로금리 정책을 폐기하고 양적완화 종료에 나설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선 시장에서는 내년 1월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주목하고 있다. 여기서 ‘마이너스’인 단기금리를 정상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를 원상태로 돌린 뒤에, 점진적인 금리 인상 시그널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별개로 YCC를 언제 중단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YCC는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장기금리마저 마이너스로 떨어지자 이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지난 2016년 시작됐다. 현재처럼 장기금리가 시장금리를 따라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국채 매입의 부담을 지면서까지 이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시장 인식이다.

일각에서는 우에다 총재가 이번에 “YCC를 매 영업일마다 정해서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한다”고 밝히며 장기금리 상한 목표를 밝히지 않은 것을 사실상 YCC 정책 철폐로 나가는 한걸음을 뗀 것이 아니냐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반면, 이러한 움직임이 성급하다는 시각도 있다. 일본은행이 주요하게 보는 지표 중 하나인 임금인상 부분이 아직 부진한 것이다. 노동시장의 경우 실업률이 주요국보다 크게 낮은 2%대 중반을 유지하면서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16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에다 총재도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돌아서고, 임금 상승이 서비스 가격을 올리는 순환이 중요하다”며 “내년 봄 노사협상에서 임금이 얼마나 오르느냐가 중요한 정책 결정 포인트”라고 말했다.

31일 일본은행이 금융정책을 수정한 가운데 한 시민이 일본은행 본점 옆을 지나가고 있다. [이승훈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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