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민 12만명 몰린 가자시티 병원들, ‘최전선’ 되나

선명수 기자 2023. 10. 3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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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가자시티 주요 병원 ‘하마스 소굴’ 지목
병원 주변 연일 공습···“병원에 지상군 투입” 전망도
“병원 떠나라” 수차례 경고···대피로는 보장 안 해
지난 19일(현지시간)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에 모인 환자들. A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대 도시인 가자시티를 에워싸며 본격적인 시가전이 예고된 가운데 환자와 피란민이 대거 집결한 가자시티 내 병원들이 ‘최전선’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미 가자시티 내 주요 병원들을 ‘작전 지역’으로 규정, 인근 지역에 수일째 대대적인 공습을 퍼붓고 있다.

31일(현지시간) 유엔과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등의 발표를 종합하면, 이스라엘군이 본격적인 지상작전에 돌입한 지난 27일부터 이날까지 알시파병원, 알쿠드스병원, 튀르키예-팔레스타인 우정병원, 인도네시아병원 등 가자시티 내 주요 병원 주변에서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 병원 부지에 모여 있던 피란민들은 거듭된 폭격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시티 내 주요 병원에 하마스 근거지가 있다며 병원에서의 군사작전을 거듭 압박하고 있다. 특히 지난 27일엔 기자회견까지 열어 가자지구 최대 규모 병원인 알시파병원 지하에 하마스 사령부와 무기고, 터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가자시티 내 다른 병원들도 지하터널로 연결해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병원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마스는 “병원을 표적으로 삼기 위해 꾸며낸 주장”이라고 부인했다.

이스라엘군의 가자시티 진입이 임박하면서 병원 안팎에서 교전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미 이스라엘군은 가자시티 내 병원들이 ‘작전 지역’이 될 수 있다면 병원들에 폐쇄 및 대피 명령을 내린 상태다. 병원 주변은 수일째 이어진 공습으로 초토화됐다.

야코프 아미드로르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보좌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민간인 사상자 발생에 대한 민감성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직접 폭격할 가능성은 낮다”면서 “지상군이 병원을 포위한 채 하마스 압박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들 병원에 미처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 수만여명이 모여 있다는 점이다. 유엔에 따르면 가자시티와 북부지역에 위치한 병원 10곳에 11만7000여명의 민간인이 대피해 있다.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소굴’이라고 지목한 알시파병원에만 피란민 5만여명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연기가 치솟고 있다. AFP연합뉴스

병원은 국제인도법상 전쟁 중에도 공격이 금지돼 있어 그나마 안전한 곳으로 여겨진다. 국제인도법의 대원칙인 제네바협약에 따라 병원을 공격하는 행위는 곧 ‘전쟁 범죄’로 간주된다. 다만 병원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에 한해서는 보호 대상에서 예외가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군은 병원에 ‘충분한 경고’와 ‘합리적인 시간 제한’을 거친 후에만 공격할 수 있다. 이스라엘군이 수 차례 병원들에 대피를 경고해온 것도 전쟁 범죄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2016~2017년 이슬람국가(IS)로부터 이라크 모술시를 탈환하기 위한 ‘모술 전투’ 당시에도 병원이 표적이 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에도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한 충분한 안전 장치 등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모술 전투 당시 연합군 부사령관으로 참전했던 루퍼트 존스 전 영국군 소장은 “당시 IS가 병원을 거점으로 삼았다는 점이 분명해졌지만, 지휘관들은 저격수 투입 등 병원 공격이 가능한지 여부를 몇 주간 숙고해야 했고 이라크 총리의 승인을 받아야만 공격할 수 있었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전시 민간인 피해를 조사하는 한 전문가는 “역대 전쟁에서 며칠 안에 병원 전체를 대피시키고 폐쇄한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이 안전한 대피 경로를 보장하지 않은 채 형식적인 대피 명령만을 반복하는 것도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가자 주민들과 구호단체들은 병원 주변을 비롯해 가자지구 전역에서 공습이 이어지는 와중에 안전하게 대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특히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하는 중환자나 인큐베이터에 있는 신생아들은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대피령의 대상이 된 가자지구 북부 주민 110만명 가운데 3분의 1은 그대로 가자시티에 남아 있는 상태다.

알쿠드스 병원에서 일주일 넘게 생활하고 있는 피란민 살라 쿠드시(52)는 “주변에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피하기 두렵다”면서 “남쪽으로 가는 길이 안전하지 않다”고 WSJ에 말했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대변인 라에드 알님스는 “이스라엘군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가자지구에 안전한 곳은 없으며, 피란민들에게는 병원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말했다.

이미 상당수 의료 시설이 공격을 받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의료시설과 의료 종사자에 대한 총 171차례의 공격으로 지난 24일 기준 493명이 사망하고 387명이 다쳤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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