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허락’한 폭력, 또 쫓겨나는 사람들···서안지구는 지금 “서부 시대”

정원식 기자 2023. 10. 3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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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는 연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만이 아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도 유대인 정착민의 폭력에 의한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사실상 ‘준 전시’ 상태에 놓여있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를 방관하며 사실상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폭력을 묵인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전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이후 서안지구 내 유대인 정착민과 이스라엘군에 의해 어린이 33명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인 115명이 사망하고 215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불법 점령한 이래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빈도가 급증했다. 지난 7일 이후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한 사건은 167건을 기록해, 올해 초 하루 평균 3건에서 하루 평균 7건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이스라엘군이 정착민들과 동행하거나 그들을 적극 엄호한 경우가 약 절반을 차지한다.

이스라엘 극우 연정은 정착민들에게 ‘자기 방어’ 명목으로 무기를 나눠주며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은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지 사흘 뒤인 지난 10일 총기 1만정을 구매해 국경 지역과 서안지구 주민들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WP는 현재 정착민들이 무기를 지급받고 있다고 전했다.

서안지구 베두인 공동체 주민 타리크 무스타파는 무장한 정착민들이 지난 7일 이후 거의 날마다 소규모 베두인 공동체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이 땅에서 떠나지 않으면 학살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에서의 전쟁이 정착민들에게 (불법적인 행동에 대한) 허가를 내줬다”면서 “전에는 우리에게 (서안지구 행정도시) 라말라로 가라고 했지만 이제는 요르단으로 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정착민들은 무스타파의 텐트를 무너뜨리고 자동차를 탈취하기도 했다.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경찰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는 결국 안전을 위해 가족 및 이웃 40여명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고 WP에 말했다.

NYT는 서안지구 헤브론에서도 정착민들이 지난 14일부터 키르베트 알라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를 차단해 주민 50명이 마을을 버리고 떠났다고 전했다. 이 마을 주민 아미르 압둘라 함단 알마하라크는 지난 14일 밤 정착민들이 자신의 집에 찾아와 총을 겨누고 연로한 그의 아버지를 끌고 다니는 등 난동을 부렸다고 말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7일 이후 이처럼 강제로 집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은 약 1000명에 이른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비티셀렘 대변인 도로르 사도트는 다수 정착민들이 면책 특권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지금은 마치 (무법과 총격이 난무하던)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 같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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