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약은 평생 먹나요? '몸 속 폭탄' 관리하려면 그래야죠
높은 혈압 치료하지는 못해
고혈압 방치 땐 동맥경화 유발
뇌졸중·심근경색 위험도 높여
근시안경 벗으면 잘 안보이듯
혈압약 복용하다 중단하면
원래대로 혈압 올라 건강 위협
식단·생활습관 개선 성공해
약 끊을 수 있는 환자 드물어
'고혈압 일상생활' 관리가 최선
기온이 뚝 떨어지고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 환절기에는 우리 몸의 근육과 혈관, 신경이 수축되고 경직된다. 추운 환경에 노출되면 혈관벽이 수축하면서 혈압이 상승한다. 일반적으로 온도가 1도 내려가면 혈압이 1.3㎜Hg가 올라가게 되는데 하루 기온 차이(일교차)가 10도 이상 나면 혈압은 13㎜Hg 이상 상승한다.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피부 혈관이 수축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고혈압 합병증인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등에 의한 사망이 11월부터 늘기 시작해 1~2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고혈압은 우리 몸의 중요 장기인 심장, 뇌, 신장, 눈을 손상시킨다. 전체 뇌혈관질환의 50%가 고혈압으로 발생하고, 협심증과 심근경색 등 심장병의 30~35%, 신부전의 10~15% 역시 고혈압이 원인이다. 고혈압은 또 동맥을 천천히 딱딱하게 만든다. 동맥이 딱딱해지는 병은 동맥경화증이다. 고혈압과 동맥경화증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악순환을 반복하며 혈관 상태를 점점 악화시킨다.
고혈압은 피가 혈관벽을 밀어내는 강도를 뜻하며 위 혈압(수축기 혈압)이 140㎜Hg(밀리미터 수은주) 이상 또는 아래 혈압(이완기 혈압)이 90㎜Hg 이상인 상태를 말한다. 혈압의 상승 원인은 두 가지로, 하나는 혈액이 혈관을 쉽게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혈액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혈액의 혈관 통과가 어려운 경우는 추위나 긴장, 혈관 수축과 관련된 약 복용, 혈관 벽에 콜레스테롤 쌓임, 혈액 내 수분 감소, 활성산소가 늘어나 혈액이 걸쭉하고 탁함 등이다. 혈액량 증가는 살이 쪘을 때, 염분 과다 섭취, 힘든 운동을 했을 때 등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20세 이상 인구의 고혈압 유병 환자는 2007년 708만명에서 2021년 1374만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2021년 기준 20세 이상 성인의 31.3%에 해당한다.
그동안 고혈압 진단 기준(국제고혈압학회)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별한 근거도 없이 진단 기준이 계속 낮아져 왔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160㎜Hg였던 최고혈압 기준이 2000년에는 140㎜Hg로, 2008년 대사증후군 검진에서는 130㎜Hg까지 내려갔다. 나이가 들면 대개 혈압은 높아지기 마련인데 이를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고혈압으로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동맥도 노화로 딱딱해져서 뇌와 손발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보내기 위해 혈압이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혈압 측정 결과 고혈압으로 진단되면 즉시 약이 처방되는 것은 아니다. '고혈압 치료 가이드라인 2019'에 따르면 고혈압 전 단계는 3개월, 고혈압은 1개월 동안 생활 습관을 개선하며 상태를 지켜보도록 돼 있다. 그래도 내려가지 않으면 '강압제(약) 치료의 시작을 고려한다'라고 돼 있다. 이는 다른 위험인자가 없는 경우다.
하지만 '초고위험군', 즉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을 일으킨 적이 있다 △비판막증성 심방세동 △당뇨병 △단백뇨가 있는 만성콩팥병 △고위험군의 위험인자 3개 이상 등에 해당되는 사람이 고혈압 진단을 받으면 즉시 약을 복용해야 한다. 고위험군은 △65세 이상 △남성 △지질혈증 △흡연자 등이다. 고혈압 이외의 질병이 없어도 '65세 이상인데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성'은 초고위험군에 해당한다. 초고위험군과 고위험군 조건은 모두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의 위험인자이고 고혈압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고혈압 환자가 약 처방을 받으면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것이 "평생 계속 먹어야 하느냐?"다. 정답은 기본적으로 "맞는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오사카대 공중위생학 노구치 미도리 특임교수(의학 박사)의 말을 인용해 "고혈압 약은 약리 작용으로 혈압을 낮출 뿐 고혈압 자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복용을 중단하면 혈압은 원래대로 돌아온다. 근시나 노안을 가진 사람이 안경을 벗으면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노구치 미도리 교수는 "약을 먹으면서 생활 습관을 개선해 일시적으로 약이 필요 없는 환자들도 아주 드물게 있지만, 엄격한 식·생활 습관을 좀처럼 지속하기 어려운 만큼 혈압약을 계속 복용하는 게 부담 없이 '고혈압 일상생활'을 보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고혈압에 의한 뇌졸중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보다 약으로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대사증후군으로 내장지방이 많은 사람은 고혈압에 노출되기 쉽다. 배가 나오고 혈압이 상승하면 일단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내장지방을 줄이거나 염분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노력해도 호전되지 않으면 고혈압 상태를 장기간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약을 써서 그 위험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혈압약은 종류가 다양하다. 약의 특징을 알면 자신의 고혈압 유형을 추측할 수 있다. 약의 특성은 인터넷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약은 '칼슘길항제(拮抗劑)'다. 혈관은 칼슘이온이 칼슘채널이라는 통로를 통해 혈관벽 세포 안으로 들어가 수축하는데, 칼슘길항제가 칼슘이온이 세포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다. 칼슘길항제는 혈관을 이완시키는 작용이 있어 복용하자마자 혈압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다. 이 경우 마음대로 약을 중단하지 말고 주치의와 상담하는 게 중요하다.
'안지오텐신II 수용체 길항제(ARB)'라는 약은 혈관 수축 작용이나 신장에서 나트륨 이온을 재흡수시키는 안지오텐신II의 작용을 억제해 혈압을 낮춘다. 이 약은 안지오텐신II가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막아 혈압을 낮추고 심장과 신장의 보호 작용도 있어서 최근 자주 사용되고 있다.
비슷한 작용을 하는 약 중에 'ACE 저해제(阻害劑)'라는 것도 있다. 이는 안지오텐신 변환 효소(ACE)를 차단해 안지오텐신II가 만들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약이다.
이들 안지오텐신II에 작용하는 약은 칼슘길항제처럼 급격하게 혈압을 낮추는 일이 없는 대신, 효과를 보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ARB와 칼슘길항제처럼 작용이 다른 여러 약을 묶은 배합제(配合劑)도 자주 사용된다. 각 약제의 양이 적은 데다 치료 효과가 높고, 1정이면 되기 때문에 복용하기 쉽게 돼 있다.
그 밖에 '이뇨제(利尿劑)'도 많이 쓰인다. 순환혈액량이 많으면 혈압이 올라가기 때문에 나트륨과 수분 배출을 도와 순환혈액량을 줄여 혈압을 낮춘다. 특히 대사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나트륨이 배출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약이 처방되는 경우가 많다.
혈압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매일 집에서 혈압을 측정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밤에 자기 전과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하루에 두 번 혈압을 체크해 약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고, 그 결과를 주치의에게 이야기하면 약 종류와 양도 조절할 수 있다.
혈압 측정은 먼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의자에 앉아 진행한다. 정좌(正坐)라면 서혜부(사타구니)의 혈관을 압박해 혈압이 올라갈 수 있으므로 의자에 앉는 것이 중요하다. 상완부에 맨셰트를 감아 재는 일반적인 혈압계는 셔츠 소매가 꽉 끼면 옷을 입고 해도 상관없다. 맨셰트에는 혈압을 측정하는 부위에 마크가 붙어 있기 때문에 그 부위를 팔꿈치 안쪽 위, 맥이 잡히는 부분에 닿도록 감아준다.
병원과 의사의 선택 기준은 중증 고혈압이 아니라면 가까운 내과에서 주치의를 찾는다. 의사는 환자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처방 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분이 좋다. 내과는 환자들이 붐비는 대형 병원보다 집에서 가깝고 차분하게 진료를 받는 곳이 좋다. 개인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고 이상이 생겼을 때는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 종합(대학)병원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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