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고 또 속아도 “이번엔 진짜 금리 고점”… 서학개미, 美 장기채 ETF 1600억원 물타기
서학 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올해 10월에도 미국 장기 국채 상장지수펀드(ETF)를 1000억원 넘게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국채 금리 상승으로 채권 가격이 내리면서 ETF 평가 가치도 떨어진 가운데, 금리가 더 오르기 어렵다고 판단한 투자자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 고용·소비 지표가 견조한 상황에서 향후 채권 금리 방향을 두고 전망이 엇갈린다.
3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는 이달 들어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이상 미국 국채 3배 ETF(DIREXION DAILY 20+ YEAR TREASURY BULL 3X SHS ETF)’를 1억2071만달러(약 1630억원) 순매수했다. 이 ETF는 미국 20년 이상 장기 국채 가격을 3배로 추종한다.
국내 투자자들은 또 ‘아이쉐어즈 20년 이상 미국 국채 ETF(ISHARES 20+ YEAR TREASURY BOND ETF)’와 일본 증시에 상장된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 국채 엔화 헤지 ETF(ishares 20+ year us treasury bond jpy hedged)’도 각각 4852만달러(약 656억원), 4757만달러(약 643억원)씩 순매수했다. 마찬가지로 미국 20년 이상 장기 국채 가격을 추종하는 ETF들이다.
올해 채권 금리가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은 꾸준히 미국 장기 국채 ETF를 사들여 왔다. 채권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 가격이 떨어지는 만큼 저가 매수하고, 앞으로 채권 금리 하락(채권 가격 상승) 때 매매 차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이상 미국 국채 3배 ETF만 올해 들어 총 10억7602만달러(약 1조4500억원)어치 사들인 이유다.
하지만 채권 금리는 이달에도 2007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찍는 등 고공행진 해 왔다.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연초 3.975%에서 현재 5.035%까지 상승했고, 같은 기간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이상 미국 국채 3배 ETF 가격은 8.03달러에서 4.04달러로 반토막 났다. 그럼에도 서학 개미들은 이른바 ‘물타기’를 하며 버티기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서도 미국 장기 국채 방향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온다. 우선 오를 만큼 올랐다는 평가가 있다. 스위스 최대 투자은행(IB) UBS는 전날 보고서를 통해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인플레이션이 완화함에 따라 국채 금리도 장기 균형 수준에서 안착할 것으로 내다봤다. UBS는 12개월 내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3.5%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채 금리가 현재보다 130bp(1bp=0.01%포인트) 이상 하락한다는 의미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뜨거운 미국 경제가 금리 상승을 유발했으나,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담이 누적되면서 2024년까지 절대 레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며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2024년 말 3.5% 수준으로 안정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반면에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내리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의견도 적지 않다. 당장 미국 정부가 대규모 국채 발행을 이어갈 계획이어서 수급 부담이 크다. 미국 재무부가 제시한 국채 발행 규모는 올해 4분기 7760억달러, 2024년 1분기 8160억달러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재무부의 자금 조달 계획과 미국 정부 예산안을 통해 (국채) 공급 우려가 재확인된다면, 경기가 꺾인다는 믿음이 강해지지 않는 한 장기 금리 변동성이 잡히기 어렵다”고 했다.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 달성 때까지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큰 점도 장기 금리가 빠르게 내려가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박준우 KB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겠지만, 기대 인플레이션 안정을 위해 필요시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가능하고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이 가시화하기 전까지 기준금리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할 것이란 입장을 반복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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