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에서 가격으로 전기차 초점 이동…값싼 'LFP 배터리' 떴다

빈난새 2023. 10. 3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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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고금리로 전기차 '판매절벽'
완성차 업체들 보급형 출시에 팔 걷어
가성비 뛰어난 LFP 배터리 속속 채택
원가 비중 가장 높은 양극재 소재로
비싼 코발트 대신 리튬인산철 사용
시장 점유율 2년 만에 16%→40%로
중국이 장악…한국업체들 추격 나서
LG엔솔·삼성SDI "2026년 LFP 양산"

최근 전기차 시장의 화두는 ‘가격’이다. 경기 침체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고금리로 자동차 구매의 부담이 커지면서 내연기관차보다 30%가량 가격이 비싼 전기차 수요는 주춤하는 추세다. 이 늪을 돌파하고 대중화의 계단에 올라서려면 결국 더 저렴한 전기차를 내놓는 수밖에 없다.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중저가·보급형 전기차 출시에 팔을 걷은 배경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전기차 배터리다. 저렴한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선 전체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배터리의 제조 비용을 낮추는 게 핵심이다.

 ○값싼 LFP 배터리 비중 16→40%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LFP 배터리는 배터리 4대 구성 요소 중에서도 원가 비중이 가장 높은 양극재 소재로 리튬인산철을 쓰는 배터리다. 값비싼 코발트를 쓰지 않기 때문에 배터리 제조에 투입되는 원자재 가격을 낮출 수 있어 저렴한 가격이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작년부터 니켈, 코발트 등 삼원계 배터리의 원자재로 쓰이는 핵심 광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LFP 배터리의 ‘가성비’는 더 큰 강점으로 떠올랐다. 저렴하고 세계 어디서나 채굴할 수 있는 철을 주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전기차에 탑재되는 LFP 배터리 비중은 2020년 16%에서 2022년 40%로 급등했다. LFP 배터리 시장을 장악한 중국에선 LFP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의 비중이 이미 3년 전부터 삼원계 배터리 비중을 뛰어넘었다.

안전성이 높고 수명이 길다는 것도 LFP 배터리의 장점으로 꼽힌다. LFP의 특성은 주소재인 철과 비슷하다. 화학 구조상 안정적인 데다 리튬이온의 이동이 쉬워서 섭씨 300도 이상의 고온이나 과충전·과방전 상태에서도 발화, 폭발 등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배터리 셀이 열화되는 현상이 적어 배터리 수명도 길다.

 ○“美 배터리 수요 40% LFP가 차지할 것”

그럼에도 LFP 배터리는 무겁고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단점 때문에 오랫동안 완성차 업체들이 선호하지 않았다. 주행거리와 출력이 중요한 전기차에는 가격이 좀 비싸도 가볍고 에너지 밀도가 높은 배터리를 탑재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신기술의 총아’로서 전기차가 시장에 진입하는 단계에선 가격보단 성능의 우위를 강조하는 전략이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얘기가 달라졌다. 내연기관차와 가격으로도 경쟁해 이기려면 저렴한 배터리가 필수가 된 것이다. 판매자 입장에선 리튬인산철 관련 핵심 특허 대부분이 지난해 만료되면서 특허 침해에 대한 위험이 사라진 것도 적지 않은 이점이다.

LFP 기술 발전으로 배터리 성능도 훨씬 개선됐다. 최근엔 리튬인산철에 망간을 섞은 LMFP 배터리가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LFP 배터리와 비슷한 가격으로도 에너지 밀도를 15~20%가량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다. CATL과 BYD, 궈시안 등 중국 업체들은 LMFP 기반 배터리를 개발해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이렇게 되자 LFP 배터리에 대한 완성차 업체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이미 LFP 배터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는 테슬라를 시작으로 폭스바겐, 현대자동차, 기아, 스텔란티스, 메르세데스벤츠, 제너럴모터스(GM) 등 유수의 글로벌 업체들은 이미 자사 전기차에 LFP 배터리를 채택했거나 향후 출시할 모델에 탑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블룸버그NEF는 2030년까지 미국 전기차 배터리 수요의 40%를 LFP 배터리가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K배터리 “2026년부터 LFP 양산”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에 집중해온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LFP 배터리 경쟁에선 뒤처진 게 사실이다. 중국 업체들이 장악한 LFP 배터리가 빠르게 점유율을 늘리면서 K배터리는 상대적으로 주춤하고 있다. EV볼륨즈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1·2위는 모두 중국 CATL과 BYD가 차지했다. 특히 CATL은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도 세를 빠르게 넓히며 1위 LG에너지솔루션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K배터리도 반격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2026년부터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부사장은 “기존 파우치형 배터리 셀의 장점을 접목한 전기차용 LFP·LMFP 배터리를 개발해 저가 전기차 시장에 대응할 계획”이라며 “LFP 배터리와 LMFP 배터리를 각각 2026년과 2027년에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DI 역시 2026년부터 LFP 배터리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별도 생산 라인 구축도 검토하기로 했다.

삼성SDI는 지난 9월 LMFP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주행거리 길고 생산비용 낮은 '4680 원통형 배터리'
LG엔솔 내년 양산


‘대용량 원통형 배터리’는 더 저렴한 배터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또 다른 산물이다. 배터리의 양극재뿐 아니라 폼팩터(모양)를 바꿔 제조 원가를 낮추면서도 성능은 뒤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술을 개량한 결과다.

원통형 배터리는 우리가 보통 배터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모양이다. 가장 오래된 배터리 기술이기도 하다. 두루마리 휴지처럼 양극과 음극을 구부려 돌돌 마는 ‘와인딩’ 방식으로 제조해 다른 폼팩터에 비해 만들기도 쉬운 편이다. 이는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각형과 파우치 타입에 비해 많은 양을 안정적으로 빠르게 생산할 수 있어 그만큼 제조 원가를 낮출 수 있다.

노트북 같은 소형 전자기기에 주로 쓰이던 원통형 배터리가 전기차용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테슬라 때문이다. 본래 원통형 배터리는 둥근 모양 때문에 차곡차곡 쌓아도 남는 불용 공간이 많아 대용량·고출력이 필요한 전기차에는 부적합하다고 여겨졌다. 테슬라는 이런 단점을 상쇄하기 위해 기존 원통형 배터리보다 지름을 대폭 키운 ‘4680 배터리’의 제원을 2020년 9월 처음 공개하고 올해 본격 양산에 들어갔다.

4680 배터리는 지름 46㎜, 길이 80㎜의 원통형 배터리를 말한다. 기존 2170(지름 21㎜·길이 70㎜) 제품 대비 에너지 밀도는 5배, 출력은 6배 개선됐다. 전기차 주행거리를 16%가량 늘릴 수 있으면서 생산 비용은 낮아 전기차 보급을 앞당길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기대받았다.

많은 제조사는 4680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양산하기 위해 큰 노력을 들여왔다. 테슬라 주요 공급사인 파나소닉은 수년 전부터 4680 배터리 생산 안정화에 공을 들여왔지만, 기술적 난제 때문에 양산 시점을 여러 차례 연기했다. 이르면 내년 9월, 늦으면 2025년으로 밀릴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 빈틈을 치고 들어갔다. LG에너지솔루션은 내년 하반기부터 국내에서 4680 배터리 양산을 시작하고, 미국에서도 새로 짓고 있는 애리조나 공장을 46시리즈 생산 거점으로 바꿔 2025년부터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애리조나 신공장에선 당초 기존 주력 제품인 2170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이를 뒤집고 46시리즈로 선회한 것이다. 생산 능력도 기존 27GWh에서 36GWh로 확대하기로 했다. 4680뿐 아니라 다양한 제원의 46파이(지름 46㎜)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어 테슬라뿐 아니라 대용량 원통형 배터리 공급을 원하는 여러 완성차 업체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회사 관계자는 “북미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기존 애리조나 증설 계획을 변경했다”며 “2025년 말부터는 인플레이션감축법(RIA)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을 (애리조나 공장에서) 양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는 국내에서 4680 제품의 개발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며 “연내 양산 라인을 구축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철저히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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