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면극은 ‘영웅의 레드 카펫’·일본은 ‘신을 위한 신전’…가면 너머 다르고도 같은 이야기

도재기 기자 2023. 10. 3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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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박물관 ‘마스크’전, 3개국 가면 200여점
한국 탈놀이·중국 나희·일본 가구라 등도 소개
“더 나은 세상 열망”…학술총서 3권도 발간
한·중·일 3개국의 가면과 가면극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한국 탈놀이의 말뚝이 탈(위)과 중국 가면극 나희에 등장하는 관우 가면(아래 왼쪽), 일본 라이호신 가면.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가면과 가면극은 다양한 형태와 내용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전승되는 오랜 역사의 문화유산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3개국에도 가면(탈)을 쓰고 하는 연극이자 놀이이며 때론 진중한 의식이기도 한 가면극(탈놀이)이 전해지고 있다. 각 나라 사람들의 개인적·집단적 정체성, 놀이나 신앙, 대대로 이어지고 있는 공동체 문화, 나아가 공연예술세계까지도 엿볼 수 있는 게 가면과 가면극이다.

한·중·일의 가면과 가면극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기획전시실에 마련한 특별전 ‘마스크(MASK)-가면의 일상(日常), 가면극의 이상(理想)’이다. 민속박물관이 지난 2년간 진행한 아시아의 가면 조사·연구 내용과 그 성과물을 엮은 학술총서 <한국·일본·중국의 가면과 가면극>(전 3권)을 바탕으로 기획한 전시다.

한·중·일 사람들은 지난 수천년 동안 대대로 가면을 만들고 가면극을 펼치면서 무엇을 담아내고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일까. 이번 전시는 3개국의 가면·가면극을 서로 비교해 살펴보며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다르고도 같은’ 속내, 간절한 바람을 읽어내고 또 공감해보는 귀한 자리이다.

한국의 북청사자놀음(위)과 중국 가면극(아래 왼쪽), 일본 가면극.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국보로 지정돼 있는 양반탈(사진 왼쪽)을 비롯해 ‘안동 하회탈’ 11점 모두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전시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도재기 선임기자

전시장에는 200여점의 가면이 관람객을 맞아 각국 가면의 다채로움을 알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탈이자 국보로 지정돼 평소 접하기 힘든 ‘안동 하회탈’ 11점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전해지는 하회별신굿탈놀이의 탈인 안동 하회탈은 고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은 대부분 바가지·종이로 만드는 데다, 그해의 탈놀이가 끝나면 태워버리는 게 일반적이어서 실제 전해지는 탈은 희귀하다. 오리나무로 만들어 대대로 보존돼온 하회탈은 조형적·기능적으로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대표적 탈놀이이자 가면극들에 등장하는 다양한 가면들도 망라돼 선보인다. 고성·통영·김해·진주 등의 오광대, 양주별산대놀이·송파산대놀이 등 산대, 봉산·강령 등의 탈춤, 부산 동래·수영 등의 야류, 북청사자놀음 등에 나오는 말뚝이·취발이·사자·할미와 영감 등이다. 1920~1930년대 옛 탈들도 있다.

전시장에 나온 중국과 일본 가면들은 상당수가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중국의 가면극인 나희(儺戱) 가면으로 ‘귀주성 덕강 나당희 가면’과 고구려 장수 연개소문을 형상화한 ‘연개소문 가면’ 등 모두 80여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일본 가면은 가면극 가구라(神樂)에 나오는 가면을 비롯해 가면을 쓴 신이 특정한 날·시간에 인간세계로 와 행복과 풍요·새해 희망을 전하는 라이호신(來訪神) 가면, 고구려·백제·신라 왕을 형상화한 가면 등을 만날 수 있다. 또 귀족적·예술적 가면극 노(能)의 오모테 가면 등도 출품됐다.

사자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한중일 3개국 가면극에 모두 등장해 악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에 나란히 선보이고 있는 3개국의 사자 가면들. 도재기 선임기자

전시장에서는 3개국 가면의 조형미, 색감, 인물의 성격과 정체성을 표현해내는 다양한 장식 등을 비교해 볼 수 있다. 특히 3개국 여인 가면, 익살꾼 가면, 사자 가면 등은 나란히 배치됐다. 3개국 가면극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사자 가면은 형태·색감·장식은 다르지만 악귀를 내쫓고 복을 기원하는 벽사의 역할을 한다.

한·중·일의 가면극은 극의 구성이나 전개 과정, 내용에서 다른 점들이 많다. 한국 탈놀이는 권력자나 기득권의 억압, 사회적 부조리, 인간의 이중성 등을 비판·풍자하고 해학이 두드러진다. 말뚝이와 양반, 취발이와 노장, 할미와 영감 같은 대결구도가 흔하다. 하지만 대부분 탈놀이의 결말은 서로 화해하고 함께 춤을 추며 하나로 어우러진다.

중국 나희는 지역과 민족에 따라 다양한 종류와 형태, 내용이 전승되지만 공통적으로 영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가 펼쳐진다. 극 속의 영웅은 관우같이 역사 속 실제 인물이거나 손오공 같은 소설 속 주인공, 신화 속의 신, 조상신 등이다.

일본의 가구라는 신에게 올리는 기도이자 제의의 하나로 펼쳐진다. 신화 속의 신, 각 종교의 신, 조상신·자연의 신 등이 등장하고 신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소원성취를 기대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특별전 ‘마스크’의 전시장 전경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전시기획자인 오아란 학예사는 “한국 가면극 놀이판이 객석과 무대의 경계 없이 서로 어우러지는 ‘열린 세계’라면, 중국 놀이판은 ‘영웅의 레드카펫’이고, 일본 놀이판은 ‘신을 위한 신전’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중·일의 가면극은 서로 다른 가면을 쓰고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모두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고, 공동체의 안녕이나 풍요를 소망한다.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오 학예사는 “3개국 가면극은 모두 달라 보이지만 보다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는 간절한 소망이란 공통된 이야기가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 이야기, 그런 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특별전 개막과 함께 발간된 <한국·일본·중국의 가면과 가면극> 총서는 3개국 가면극 연구자 44명이 참여해 한·중·일 가면극 각 20종·24종·23종을 다룬 3권의 책으로 학계의 관심을 모은다.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장은 “한·중·일 3개국에 이어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가면과 가면극을 조사·연구 중”이라며 “가면·가면극 연구는 향후 한국과 아시아의 민속, 생활문화 비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3월3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포스터(왼쪽)와 전시장 전경 일부.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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