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현수막 걸고 행사 찾는 인권위원, 안건 197개는요?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상임위원이 연가를 내고 고향인 부산 영도구 지역행사에 참석했다. 김 위원은 자신이 위원장을 맡은 인권위 소위원회(침해구제 제1위원회) 회의를 8월1일부터 10월31일 현재까지 3개월째 열지 않고 있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김 위원이 본업을 뒤로한 채, 총선 출마 준비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0월13일 김용원 위원은 부산 영도구청이 주최하는 ‘영도다리축제’ 개막식에 참석해 무대에 올랐다(위 사진 중 노란 동그라미). 영도구청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좌석 맨 첫 줄에 앉은 내빈들이 무대에 올라갔고, 축제에 도움을 줬거나 영도구와 전반적으로 관련된 분들을 추천받아 좌석 배치도를 작성했다”라고 설명했다.
부산 영도구는 김용원 위원이 1996년부터 5차례에 걸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거나 당내 경선에 나섰던 지역이다. 검사 출신인 김용원 위원은 15대 총선(무소속)을 시작으로 16대 총선(민주국민당)→18대 총선(무소속)→20대 총선 당내 경선(새누리당)→21대 총선 당내 경선(더불어민주당) 등 정당을 바꿔 가며 부산 영도구 선거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현재 부산 영도 지역구 의원은 황보승희 의원(무소속)이다. 김 위원은 지난 2월6일 대통령 지명 몫으로 인권위에 합류했다.
김용원 위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고향이고 아는 사람들도 많다. 하루 연가 내고 놀러 간 게 문제가 되나. 총선 출마와 인권위원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라고 말했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의도는 뻔하다. 총선 출마 목적이 아니라면 인권위와 관련 없는 특정 지역에만 가서 인사할 필요가 무엇이 있나”라며 김용원 위원의 행사 참석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0조에 따르면, 인권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운동에 관여할 수 없다.
김용원 위원의 행보가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0월5일 인권위 내부 익명게시판에는 김 위원이 고향인 부산 영도구에 건 ‘빨간 현수막’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김용원 위원은 추석 기간 ‘정겹고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이름과 인권위 상임위원직을 명시한 현수막을 달았다(아래 사진).
해당 게시글 작성자는 ‘인권위원 자리는 던지고, 부산 영도구에서 새 출발 하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김용원 위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총선 출마하기로 결정된 게 전혀 없다.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게 원래 내일 일을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김용원 위원이 위원장을 맡은 침해구제 제1위원회(침해1소위)는 매달 1~2회 열렸는데, 현재 3개월째 '개점휴업' 상태다. 김용원 위원은 8월1일 이후 회의를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그사이 인권침해 구제를 기다리는 진정 사건 197건(10월25일 기준)도 발이 묶였다.
〈시사IN〉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인권위원 복무 상황’에 따르면 김용원 위원이 사용한 전체 11건 연가·병가·조퇴 중 9건이 침해1소위가 멈춘 8월1일 이후 사용됐다.
김용원 위원은 〈시사IN〉에 침해1소위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처 조사부서 국·과장 국·과장의 인사 조처가 이뤄진 후에야 소위원회를 다시 열겠다고 말했다. “조사부서에서 소위원장의 업무상 정당한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소위를) 열 수는 없다. 이 사람들 데리고는 일할 수 없다.”
침해1소위가 멈춘 거는 8월1일 침해1소위가 심의한 ‘경찰의 수요시위 방해에 대한 부작위 진정 사건’이 발단이 됐다. 정의기억연대가 ‘수요시위’ 때 가해지는 욕설과 혐오 발언 등을 막아달라며 제기한 진정에 대해 침해1소위 위원 2명(김용원 위원, 김종민 위원)이 기각, 1명(김수정 위원)이 인용 의견을 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3조 제2항은 ‘소위원회 회의는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라고 규정한다. 김용원 위원(소위 위원장)은 소위 위원 3명의 의견이 합치되지 않았다며 김수정 위원의 반발에도 ‘기각’을 선언했다.
2001년 출범 이후 인권위는 지금껏 위원 3명의 만장일치로 인용이나 기각 결정이 나지 않을 경우, 전원위에 올렸다. 이후 전원위에서는 가능한 한 인권위원 11명이 합의할 때까지 토론한 뒤 출석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인권위 사무처는 김용원 위원이 기각으로 선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보고 후속 조치를 진행하지 않았다. 김용원 위원이 소위원장의 “업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라고 문제 삼는 부분이다.
김용원 위원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인권침해 구제 조치를 권고하려면 의결이 필요한데, (3인 찬성으로) 의결이 안 되면 다 끝난 거다. 인권 침해로 안 보기 위해(기각) 필요한, 그런 의결 정족수가 어디 있나. 아무거나 인권침해로 보고 덜컥덜컥 권고를 남발하지 말라는 의미다. (인권위가) 20년 동안 아주 일방적이고 제멋대로 해석해왔다”라고 말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입장문을 내고 인권위원 자리를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면 당장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침해구제 1소위는 주로 경찰에 의한 인권침해를 다룬다. 인권위에 진정되는 많은 진정 사건이 경찰과 검찰, 교도소 등에 의한 인권침해라는 것을 고려하면, 김용원 인권위원의 직무유기로 인해 수많은 진정인이 피해를 보고 있고 앞으로도 보게 될 것이다.”
박주민 의원은 “인권침해 구제 결정만을 기다리는 진정인들은 뒤로한 채, 고향 행사에서 악수를 하는 장면을 반가워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결코 바람직한 국가인권위원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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