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에 개방적 DNA” … 아일랜드, 인력난·저출산 둘다 해결

한예경 기자(yeaky@mk.co.kr) 2023. 10. 3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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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의 교훈 ◆
인구 500만에 불과한 소국
유럽 최고 수준 난민 수용
전체 인구 2%가 우크라인
과감한 이민자정책 시행에
출산율 伊·스페인보다 높아
“난민들에게 재교육 제공
노동시장 기여하게 해야”
아일랜드는 예나 지금이나 ‘이민의 나라’다. 과거에 미국, 호주 등 각국으로 이민자를 보내는 나라였다면 이제는 이민자를 받는 나라로 바뀌었을 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한 나라도 아일랜드다. 인구 500만명이 조금 넘는 아일랜드가 9만4000명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았다. 인구 대비 1.9%를 넘어서는 수치다.

물론 독일(약 108만명), 폴란드(약 96만명) 등이 수용한 우크라이나 난민에 비하면 얼마 안 되지만 독일 인구가 아일랜드 인구의 16배가 넘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특히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약 20%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최근 아일랜드는 글로벌 기업 진출이 늘면서 주택난이 심화돼 국민이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호텔을 비롯한 정부 지원 주거지역을 내주는 길을 택했다.

그 덕분에 아일랜드 인구는 505만명까지 늘어나면서 지난 15년 만에 가장 큰 규모가 됐다. 만약 전쟁이 내년에도 지속된다면 3만~5만명에 이르는 난민이 아일랜드로 더 유입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사이먼 해리스 고등교육·혁신과학부 장관은 “이민자를 수용하는 마음은 아일랜드인의 DNA”라고 설명했다. 1800년대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 먹고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했던 선조의 피가 이어져 내려오면서 전쟁의 참화를 피해 넘어온 우크라이나인에게 과감히 국경을 열어줬다는 얘기다.

다음달 2일 한국을 찾는 해리스 장관은 지난 25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진행된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1800년 초 800만명에 달하던 아일랜드 인구는 이민을 떠나는 이들이 늘면서 200만명 이상 급감했는데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이 증가하면서 아일랜드로 이민을 오는 인구가 많아져 전체 인구도 늘고 있다”고 밝혔다.

과감한 이민자 수용책을 쓰다 보니 출산율도 꾸준히 1.7%대를 유지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신음하고 있는 스페인(출산율 1.3%), 이탈리아(1.2%) 등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특히 우크라이나 난민들 중 여성과 어린이 비중이 높은 것을 감안하면 이들에 대한 교육 문제는 심각하다. 단순히 살 곳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쳐야 사회 불안 요소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 장관은 난민들을 재교육시켜 노동시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난민들에게도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장기적인 노력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어린이들에게만 교육을 제공하고 있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성인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도 사회 적응을 위한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유럽연합(EU) 내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아일랜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부터 러시아에 대한 강경 노선을 유지하면서 인도주의적·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 왔다.

특히 최근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중동 지역에까지 분쟁이 심화되자 내각 수뇌부가 이스라엘을 직접 찾아가는 등 인도적 지원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아일랜드는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해 왔으며,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며 “한국을 포함한 유엔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과 주권의 원칙에 대해 광범위한 지지를 표시해준 것에 대해 아일랜드는 EU 국가 일원으로서 진심으로 감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떤 방식으로 끝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평화협정의 조건, 일정 등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달려 있지만 러시아가 침공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평화협상을 위한 조건이 성립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버라드커 총리는 “이제 다시 겨울이 다가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러시아는 우리가 전쟁에 지쳐 우크라이나를 외면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그건 결국 아일랜드와 한국이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유에 대한 가치를 저버리는 게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재차 강조했다.

1인당 GDP 역내 2위로 넘치는 재정 흑자 … 내년 국부펀드 만든다
국부펀드가 ‘오일머니’를 거머쥔 중동, 노르웨이 등 일부 산유국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막대한 법인 세수를 바탕으로 재정 흑자를 누리고 있는 아일랜드는 국부펀드를 만들어 미래를 위해 저축하겠다고 밝혔다.

미할 마틴 아일랜드 부총리 겸 외교·국방장관은 지난 24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아일랜드가 1973년 유럽연합(EU)에 가입했는데, 그때만 해도 아일랜드가 너무 가난하다며 EU 가입을 반대하는 시각이 있었다”며 “하지만 우리는 올해부터 국부펀드를 만들어 미래를 대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일랜드의 EU 가입 50년이 지난 지금 아일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만달러를 넘어서면서 EU 내에서 룩셈부르크 다음으로 가장 큰 부자 나라가 됐다는 걸 은근히 꼬집어 주는 듯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달 중순 의회에 2024년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내년부터는 미래 연금 고갈 등을 대비하기 위해 ‘미래기금(Future Fund)’, 인프라스트럭처·기후변화 투자를 위한 재원을 적립하는 ‘인프라·기후기금’ 등 두 가지 국부펀드를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재원은 넘치는 세수다. 아일랜드 정부는 재정 흑자 규모를 올해 100억유로, 내년에는 162억유로 등으로 2026년까지 4년간 총 650억유로가 누적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따라 ‘미래기금’에 매년 GDP의 0.8%에 달하는 43억유로를 저축해서 총 1000억유로(연 투자 수익률 4% 가정 시)를 모으기로 했다. ‘인프라·기후기금’은 내년에만 140억유로가 투입되고 이후 매년 20억유로씩을 더 모아서 탄소 감축을 위한 인프라 투자에 사용된다.

아일랜드 정부는 2030년까지 저탄소 기술 인프라 투자에 1190억유로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 자금을 활용한 기술 투자도 고려하고 있다.

마이클 맥그래스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지난 25일 매일경제와 만나 “지금은 세수가 늘어 상당한 규모의 재정 흑자를 기록했지만 미래에 이런 행운이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이때를 대비해서 두 가지 종류의 국부펀드를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펀드는 고령화 등으로 인한 연금 고갈에 대비하기 위한 자금이고, 인프라·기후펀드는 기후변화 대비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으로 용처가 정해져 있다. 넘치는 돈을 국가가 인프라 투자 등에 사용할 경우 가뜩이나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한 우려는 지금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투자를 미룰 수는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몰려드는 기업·이민자에 주거난 심각…아일랜드 청년 10명중 8명 부모와 동거
아일랜드에서 주거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최근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에서 18~34세 청년 중 부모 집에서 같이 사는 이들의 비중을 조사한 결과 84.6%, 즉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부모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통계를 내놨다.

남유럽 재정위기를 겪었던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청년 80% 이상이 여전히 부모 집에서 얹혀사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북유럽 강국은 20% 안팎만 부모와 같이 산다고 답했다. 이 통계가 나오자 아일랜드 정부는 조사가 잘못됐다고 즉각 반박하기도 했다.

통계가 어느 정도 왜곡됐다고 해도 실제 아일랜드의 주거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일랜드 인구의 절반가량이 더블린 일대에 몰려 살고 있는 데다 더블린 리피강 주변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둥지를 틀면서 주거난은 더욱 심화됐다.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이 더블린에 모여 있는 ‘독’ 지역을 ‘실리콘 독’이라고 부르는데 이 지역에서 구인·구직을 할 때는 회사가 주택을 지원하는지 여부가 가장 큰 이슈다.

[더블린 한예경 글로벌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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